희망의 시작

우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글로 기록합니다.

by 사잇결

나는 오랫동안 심리상담을 외면해 왔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신앙으로, 믿음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은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일 뿐이고,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풀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우울에 허덕이고
병원에 들락거리고
삶의 소망이 보이지 않던 시기에
나를 바닥에서 꺼내준 것은 다름 아닌 ‘상담’이었다.


처음에는 상담 친구와의 대화였다. 그다음에는 상담 아카데미였다.
그 과정을 지나며 나는 조금씩, 아주 조심스럽게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가끔은 상처라는 안경이 신앙이라는 존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동안 많은 것들을 ‘믿음 없음’으로 단정 짓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그 시간들이 조금은 용서받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먼저 이름을 얻게 된 감정은 ‘양가감정’이었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왔지만
정체를 알지 못했던 마음이었다.


나는 글쓰기가 너무 좋고 재미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을 사람들이 읽는 것은 무섭다.
잘 썼다는 말 앞에서는 몸 둘 바를 모르겠고,
아무 반응이 없을 때는 깊이 실망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위로받기를 바란다.


서로 정반대처럼 보이는 이 마음들 앞에서
나는 스스로를 이상하다고 여겼다.
왜 이 마음들이 함께 존재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양가감정’이라는 설명을 만났을 때,
나는 처음으로 숨을 편히 쉴 수 있었다.


아, 이래도 되는 거였구나.
이런 마음을 동시에 품고 살아도 되는 사람이구나.


이 하나를 이해한 것만으로도 나는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졌다.

상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나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꽁꽁 싸매어두고 스스로에게 “괜찮다”라고 말하며 지나쳐온 나.
아프지 않은 척,
문제없는 사람인 척,
꾹꾹 눌러 담아왔던 시간들.


그 모든 것이 비슷한 상황의 반복 속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나의 트리거가 되었고, 나는 서서히 소진되었으며
어느 순간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끝내, 우울이라는 이름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외면해 온 것은
어떤 감정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그 이야기를 더 이상 미루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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