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글로 기록합니다.
조심스럽게 익숙한 현관문을 바라본다.
손잡이는 오랫동안 손때를 타지 않아 먼지가 보얗게 쌓여 있다.
먼지를 털어내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덥석 잡았다.
그리고 돌렸더니 문이 열렸다.
방 안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듯했다.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살림살이는 그대로였다.
다만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을 뿐이었다.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간다.
익숙한 안방이 보인다.
여자는 자고 있지 않다.
이불을 덮고 눈을 감고 있다.
이불이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인 걸 확인하고 살아 있음에 안도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여자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알지 못한다.
남자는 안방 한가운데 서서 씩씩거리고 있다.
침을 튀기며 한참 말을 하고 있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안방 귀퉁이에는 여자아이 하나가 웅크리고 있다.
동그란 눈을 크게 뜬 채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다.
옆집에서 재밌게 놀다 돌아온 아이는
별안간 닥친 이 상황이 너무 무섭다.
무엇 때문인지도 모른 채.
물어볼 용기조차 없이.
아이는 여자가 안쓰럽다.
그러면서도 울고 있는 자신에게
아무도 와서 안아주지 않는 것에 서운해한다.
한참을 자기 분에 못 이겨 이리저리 날뛰던 남자는
갑자기 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다.
손이 부르르 떨고 있는 것을 아이는 봤다.
아이는 온 세상이 멈춘 것 같다.
소리 지르고 싶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리가 멈춰버렸다.
“오늘은 너 죽고 나 죽고 우리 다 죽자!”
그 말에 번쩍 정신이 든 아이는 생애 가장 빠른 속도로
남자의 다리를 있는 힘껏 부둥켜안는다.
그리고 열 살 인생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울부짖는다.
“아버지! 아버지, 엄마 죽일 거면 나 먼저 죽여요.”
그 말과 함께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도끼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아이를 끌어안고 오열한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부부의 싸움은
아이의 말로 마무리된다.
다만 아이는 이 일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내가 잘해야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을 거야.
내가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해.
엄마를 지켜야 해.
누군가 힘들어하면 반드시 구해야 해.
그래야 나도 살 수 있으니까.
그 마음은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다.
그 의무감을 안고 살아온 아이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