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글로 기록합니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았다.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연락을 하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지금 자기가 있는 곳으로 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온다.
멀지 않은 거리였다.
급히 달려가 보니 그분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현장을 보여주며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몹시 미안해했다.
‘그럼 미리 말을 했어야지.’ 그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
이번이 두 번째였지만,
너무 미안해하는 표정 앞에서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저녁 약속까지 했던 터라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며 버텨온 기대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허탈함이 밀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곱씹었다.
그 사람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눈빛에는 악의도 없었다.
그때 문득 알게 되었다.
그 분노 자체가 나의 손가락질이었다.
내가 화가 난 이유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거절하지 못해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온 적이 많았다.
할 수 있을 줄 알았고, 처음은 언제나 선의였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다 잘해주고 싶었다.
내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고,
누군가의 어려움 앞에서 거절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나는 늘 가장 마지막이 되었다.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다 보니
정작 나를 돌볼 여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나에게 같은 실수를 했던 이 분도 자연스럽게 용서가 되었다.
억지로 꺼내 쓴 용서가 아니라 그 성향 때문에
얼마나 힘들까 하는 이해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내가 보이니
비로소 상대가 보였다.
그제야
손가락이 펴졌다.
공손해진 손바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