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을 악착같이 움켜쥔 나를 마주하자, 비로소 내가 보였다.
나는 스스로를 ‘사유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생각은 늘 선명했고, 말의 주제도 명확했다.
그래서 나는 잘 살고 있다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주변사람들의 동경하는 눈빛이 나에게 확신을 더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선명함조차 누군가의 인정을 갈망하던 마음 위에 세워진 모습이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위에 쌓아 올린, 인정에 목마른 모습이었다.
나는 잘하고 있는 ‘나’만 나라고 인정했다.
조금만 흔들려도 무너질까 봐, 모자라고 서툰 나를 외면했다.
허술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 허락할 줄 몰랐다.
왜냐면 모든 것을 잘해야만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도 “사람들 눈에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라고 다그쳤고,
나에게는 쉼표 하나도 내주지 않았다.
누군가 보기엔 부지런함이 곧 훌륭함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는 동안 외면당한 내 결핍이 울부짖었다.
“나 좀 봐. 나도 너야!”
그 목소리를 무시한 채 나는 계속 소모됐고,
삶의 질서는 흐트러졌고, 나는 결국 나를 놓쳤다.
남의 시선에 비칠 때만 살아 있는 것 같았고,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만 내 일이 의미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병들어갔다.
잘난 나만 붙들려했던 나는, 타인의 부족함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랑을 핑계 삼고, 도움을 명분으로, 때로는 폭력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 안 돼. 나는 이렇게 했어. 너도 해봐.”
상대의 배경도 감정도 깡그리 무시한 채.
그렇게 나는 꼰대가 되어 있었다.
무너진 곳은 아이들 앞이었다.
아이들은 내 뜻대로 자라지 않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나보다 더 훌륭하고 완벽하게 커주길 바랐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아이들이 대신 이루어주길 바라며 닦달했다.
아이들은 점점 무기력해졌고, 눈에 드리워진 공허는 날로 깊어졌다.
그제야 아찔하게 깨달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말끝마다 사랑한다고 했지만,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나의 체면, 남의 시선에 사로잡혀 살았다.
나도 놓치고, 아이들도 놓쳤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후련함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개운하면서도 깊이 수치스러웠다.
그래도 이제라도 알았으니
감사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를 자각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늦지 않은 지금 알아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이제 다짐한다.
잘난 나만 돌보지 않기로.
부족한 나를 밀어내지 않기로.
삶은 여전히 어수선하고, 마음의 날씨도 자주 흐리다.
그럼에도 이제는 알고 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첫걸음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끝까지 바라봐주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렇게 다시 오늘을 살아낸다.
오늘도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