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전처럼 살 수 있을까?

<노인과 소년>을 읽고

by 사잇결

노인과 소년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뭐지? 무슨 이야기지?”

이야기는 분명 흘러가는데, 중심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노인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
소년은 먹어보고, 맡아보고, 몸으로 확인한다.
이 단순한 대비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처음엔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의문을 안은 채 하브루타 모임에 참여했다.
여러 질문이 오가고, 각자의 해석이 겹치고 어긋나는 동안
나는 비로소 이 그림책이 내게 묻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질문은 ‘노인의 지혜’에 관한 것이었다.



노인은 단 한 번도 희망을 쉽게 내려놓지 않는다.
세 번의 고장을 지나면서도 그는
그 안에 남아 있는 가능성을 끝까지 바라본다.

처음엔 그 태도가 지혜라기보다
무모함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상황을 외면한 낙관이 아니라,

쉽게 절망하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까웠다.


노인의 해맑음은
아무것도 몰라서가 아니라,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노인은 소년을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았다.
자신의 판단에 도전하는 소년의 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지혜는 가르치는 데서 오기보다
함께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노인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불치하문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림책 속에서 노인은 늘 앞장선다.
처음에는 자신만을 지탱해 줄 지팡이를,
그다음은 지팡이와 횃불을,
마지막에는 모두의 길을 밝히는 횃불만을 들고 나아간다.
이 모습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나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을 함께 밝히는 사람 말이다.



노인의 딱딱한 심장 역시 그렇다.
전염병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단순한 무감각이 아니라면,
그것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단단한 수용의 힘에서 온 것이리라.
고집이 아니라, 유연함에서 비롯된 강인함 말이다.



또 노인은 자연의 이치를 알고 있다.
독이 든 열매는 자연의 선물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되었음을,
그는 본능적으로 꿰뚫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수용할 줄 아는
진정한 어른이다.


겉으로 보면 노인은 해맑고 무심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조차
타인의 경험을 통해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다.
보고 듣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기에,
그가 세상을 읽는 방식은 오히려 더 깊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지혜로운 노인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문득 엽전이 떠올랐다.
엽전의 안은 네모이고, 겉은 둥글다.
마음속에 세운 기준은 분명하고 단단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그 기준을 앞세우기보다
둥글게, 원만하게 살아가는 태도.


그것이 『노인과 소년』에서
노인이 내게 보여준 삶의 방식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아는 어른은 아니어도,
기준은 분명히 품되
그 기준을 둥글게 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니, 그렇게 살아내려 한다.

꽤 괜찮은 어른으로 말이다.


화면 캡처 2026-01-23 135828.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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