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기억
“언제나, 늘, 항상”
돌아보면 꿈같은 날들이었고 어떻게든 잡고 싶었다. 그런데 사랑은 떠나버렸다. 어떠한 약속도 없이 멀리 떠났고, 어떤 평범해 보이는 젊은 여자와 함께였다. 그는 떠나면서 덫이라도 걸린 양 파드덕 거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조금 지나자 그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어떨 때는 나조차 외면해 버렸다. 놓아줘버렸다.
“그대여 떠나지 마라. 그대여 안녕
뭐라고 말을 하여도 건넬 수가 없잖아.”
노래가사가 며칠 전부터 맴돌았다. 그가 떠난 지 1년이 넘었다. 사랑 안 할 이유를 가만히 누워 되뇌어보며 세기 시작했다. 갑자기 애절해졌다. 그가 떠났는데도 갑자기 애절해져서 잡는 척하다가도 다시 놓아주길 반복하며 노래를 불렀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무엇인가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기억할 뿐이었고 슬퍼했다. 그렇다. 그랬을 뿐이었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믿었으니까.
유리창이 깨질까 봐 겁이 났었다. 다행히도 이번 여름은 폭풍우가 거세지 않았다. 덜컹거리는 낡은 유리창도 그리 시끄럽진 않았으니까. 그런 집이었다. 그의 집은 애초에 폭풍우에 유리창이 와장창 깨져서 집값이 헐값으로 나와서 살 수 있었던 제주시 **동 집이었다. 그 동네는 집값이 꽤 비쌌는데 자랑하고 싶었던지 집에 오면 김치찌개를 끓여 주겠다 했었다. 종갓집 김치를 좋아하던 남자, 종갓집 김치 때문에 물러간 듯 생각이 되었다. 평소에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 둘이서 무슨 이야긴지 하다가 끝으로 치달아 아버지가 약을 드시기 전까지는 그와 난 사이가 굉장히 좋았다. 그러나 그 약 때문에 한동안 시달리다가 나와의 헤어짐을 결심한 그는 슬프지는 않아 보였다. 비교적 괜찮은 얼굴을 하고선 슬퍼하는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난감해하며 날 그의 낡은 차에서 내려주었다.
“미워해도 괜찮아”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미움받을 용기, 그 책이 그의 직장, 그의 자리 책꽂이에 놓여 있었다. 어쩌자고 미움받으려 작정한 것인가 몇 번이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를 만날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던 그의 얼굴을 보면서 잊어버렸던 이야기들, 지워버린 그의 전화번호, 다시 아는 사람을 통해 물어봤다가 또다시 지워버린 전화번호,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이별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써 모른 척하기, 만났다 헤어졌다 하기를 세 번째, 그는 다시 결혼을 했고. 친구와의 이야기를 들으니 무지 잘 나가고 있다고 한다. 억울했다. 나와의 만남 속의 잘 나감은 아니었기에. 그는 잘 나가지 못했을 때 나를 찾았다. 무슨 에너지의 창고처럼 생각되었을까. 난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를 반겼고 그를 보며 웃어주었다.
“사랑해.”
내가 그의 가슴에 가만히 남긴 말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던 그였지만 나에겐 시간이 별로 없었다. 젊음은 이미 지나가고 그도 나도 오십이 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