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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Aug 24. 2023

그림책이 주는 위로

전소영 <연남천 풀다발>(달그림)

그림책을 좋아하는 한 선생님을 통해 전소영 작가를 알게 되어 도서관에 가 작가의 책을 빌려왔다. 양장본으로 된 책 표지 그림이 자연스럽고 정갈했다.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과 글로 구성되어 있는 책 제목은 <연남천 풀다발>이다.


작가는 연남동에 살면서 매일 홍제천을 산책하며 본 풀들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한다. 홍제천이 실제 지명이지만 동네 이름을 따 연남천이라 지었다고도 쓴다. 오랜만에 만나보는 여백이 많은 그림책의 느낌이 좋았고 풀다발이라는 단어와 천변 주위에 돋아나는 풀과 들꽃 그림이 좋았다.

<연남천 풀다발> 책 표지 그림 전소영

표지에 그려져 있는 풀다발은 화사하고 알록달록한 꽃다발이 아니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름 모를 풀들을 묶어 놓은 그림인데 평범한 우리 일상의 멋이 들어있 익숙한 것들이 새롭게 느껴져 좋았다.

책 <연남천 풀다발>  전소영 그림

전소영 작가의 그림책에는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다. 책을 펼치면 수채화로 그려진 홍제천이 담박하게 아름답다.


연필이나 펜으로 스케치하지 않고 하얀 종이에 여러 빛깔의 초록과 갈색 물감을 묻혀 그려냈을 작가의 손을 따라가다 보면 가을에 물든 나무가 있고 천변에 돋은 풀들이 있고 물속에서 출렁거리는 건물과 식물들이 있다.


가을빛으로 물든 색은 무르익어서 퇴색되어 가는데 작가가 찾아 낸 가을빛 수채 물감 천변 풍경은 만추의 아름다움이 고요 속에 들어서 있다.

“모든 것은 가을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시작되는 이야기는 가을에 볼 수 있는 참쑥과 깃털처럼 가벼운 씨앗들과 산국을 지나 겨울에도 보랏빛 열매를 달고 있는 좀작살나무와 자줏빛 열매를 단 배풍등을 지난다.


겨울에도 앙상한 가지 끝에 위태로이 매달려 있는 열매들을 발견하고 그들이 첫서리에 반짝이는 것을 살펴보며 작가는 식물과 공감하고 위로를 받는다.

따뜻한 봄이 오면서 작가의 풀꽃 그림은 훨씬 다채로워진다. 이름도 예쁜 꽃마리, 우리에게 친숙한 쑥과 냉이, 라일락, 이름은 낯설지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옥잠화, 소리쟁이, 염주괴불주머니의 모습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섬세하게 표현해 내어 여백이 많은 공간만큼 읽는 이에게도 여유로운 마음을 준다.


그다음에는 연두색과 청록색 사이의 초록 여름 풀과 꽃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노랗고 자그마한 애기똥풀, 분홍빛 나는 벌개미취와 메꽃, 뾰족한 풀 바랭이, 둥글게 마디풀이 여름의 초록빛으로 그려져 있다.

뾰족한 풀과 둥근 풀을 보며 작가는 말한다. 둥근 풀은 뾰족한 풀이 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고. 바꿔 말하면 뾰족한 풀도 둥근 풀이 되기 위해 애쓰지 않을 것이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풀꽃에게서 배우는 마음에 나 역시 공감한다.


8월의 뙤약볕 속에서 풀들은 무성해지고 초록은 점점 진해져 간다. 그 속에 줄사철나무와 환삼덩굴과 수염개밀의 초록이 있다.

9월에 보이는 강아지풀은 초록 위에 붉은 가을빛이 앉아 있고 담쟁이덩굴이 단풍 든 모습은 다시 가을이 돌아왔음을 알려준다. 단풍으로 물든 가을잎은 초록과 붉은빛이 각각의 잎마다 다른 방식으로 물들어 있어 다채로운 조화미가 있다. 자연이 주는 다채로움을 물감에 풀어 붓으로 그려낸 작가의 섬세함으로 독자의 눈이 정화되는 것 같다.

10월에 볼 수 있는 기생여뀌와 바랭이 그림을 통해 작가는 말한다.

     “어느덧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언제나 똑같은 계절은 없다.


       반복되는 일에도

       매번 최선을 다한다. “


가을에서부터 다시 가을까지 일 년 동안 홍제천을 따라 피고 지는 풀꽃들을 관찰하고 그리면서 작가는 그들에게서 배우고 위로받았을 것이다. 또 그걸 그리면서 독자에게 그 위로 배움을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림책이다.

천변에 아무렇게나 돋아있고 피어 있는 작가의 시선이 가 그림이 된 이름 모를 풀과 들꽃들의 이름이 책 뒷머리에 실려 있어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의 모양새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수까치깨, 꽃마리, 소리쟁이, 염주괴불주머니, 벌개미취, 바랭이, 마디풀 같은 이름들은 고유한 우리말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 같아 정감이 간다.


그림은 작가가 관찰한 만큼 섬세하고 작가가 마음 쓴 만큼 자연스럽다. 줄기에 돋아있는 솜털까지 표현할 만큼 작가는 그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오랜동안 시선을 주었을 것이다.


나는 전소영 작가의 그림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감상하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보이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집중하고 노력한 작가의 시간들이 보인다. 일 년이라는 혹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천변의 풀꽃에 마음을 쓴 작가의 시선이 보인다. 그래서 그림책을 보는 독자는 가을로부터 그다음 해 가을까지 풀꽃들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더구나 이름 모르는 꽃들에 아주 예쁘고 독특한 이름을 알게 된다는 것은 덤으로 좋은 점이다.


자연스러운 삶의 향기와 따뜻한 위로가 있는 참 좋은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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