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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Sep 14. 2023

나의 롤모델

그녀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점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인데 그 중에 하나는 나에게도 롤 모델이 생긴 점이다. 눈이 침침해지고 몸이 점점 노화되는 것을 느끼며 어떻게 나이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되는데 노년의 삶을 멋지게 꾸려가고 있는 롤모델을 발견하게 되어 나는 참 기쁘다. 그래서 이 글은 내가 발견한 그녀들에 관한 이야기다.


몸 건강 롤모델


수영장에서 만난 그녀는 몸 건강에 대한 나의 롤모델이다. 여든일곱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수영장에 들어와 쉬지 않고 열 바퀴를 돈다. 수영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숨 고르기가 안 되면 한 바퀴 돌기도 힘들다. 더구나 나이 든 어르신들은 수영이 힘들어서 물 속에서 걷기를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쉬지 않고 천천히 자신의 페이스대로 자유형과 배영으로 열 바퀴를 돈다.


탈의실에서 본 그녀는 걷기도 힘들 만큼 나이 든 티가 났는데 한쪽 발을 절면서 걷는 그녀에게 수영은 자신의 뜻대로 몸을 움직이며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일지도 모른다. 수영장에 나오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그녀가 수영으로 쉬지 않고 열 바퀴를 도는 것은 귀찮음과 힘듦을 이기고 스스로를 돌보는 거룩한 장면이다. 그녀의 자기관리 의지를 보면서 나는 노년에도 수영하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마음가짐 롤모델


내가 사는 동네는 요즘 도시재생 프로그램으로 마을만들기를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지원을 받아 노후 주택을 수리하고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 예정이다. 그래서 주민협의체를 중심으로 교육을 받고 있는데 그 중에 나의 두 번째 롤모델이 된 그녀가 있다.

 

그녀는 도시재생사업 지원을 받은 지역에 살고 있어서 주민 협의체에 들어왔는데 나 역시 교육을 받으러 왔다가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녀가 어떻게 교육을 받으러 다닐 수 있을까 우려스러워 보여 나는 어디선가 뵌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을 걸었더니 그녀는 여기저기 배우러 다니는 데가 많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마을미술관 전시회 때 그녀의 그림과 그녀를 본 기억이 났다.


지금 그녀는 인생 그림책 만들기 강의를 다니고 있는데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짧은 글과 그림으로 그려서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녀는 충남학과 유교도 배운다. 요즘에는 무료로 교육시켜 주는 데가 많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옛날에는 생각도 못한 교육 조건이라고 활기찬 목소리로 말한다. 그녀는 전시회가 있거나 강연이 있으면 무조건 구경을 하는데 그런 데 다니는 게 재미있다고 한다.


교육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그마하고 마른 몸집으로 더구나 젊은 시절 일을 많이 해선지 어깨가 굽어 있는 그녀의 걸음은 연약하지만 활기로웠다. 대화하면서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세월의 무게도 비껴갈 만큼 단단했다. 사실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되는 교육은 귀찮을 법도 한데 그녀는 남의 말을 들으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생각을 키워가는 게 재미있다고 한다. 남편을 일찍 여읜 그녀는 남편 몫까지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죽은 남편이 내가 많이 배우는 걸 좋아할 거라고도 말한다.


아흔이 가까운 그녀가 새롭게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세상과 사람에 대해 끊이지 않는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내게는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오래된 단층 슬라브집으로 들어가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녀가 한 말이 떠오른다.

“그냥 즐겁게 사는 거야, 난 걱정은 하지 않아.”


나는 그녀의 모습 속에서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그리고 오래 살았다고 해서 모든 게 시들한 채 사는 건 아니라는 걸 보았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구나, 라는 걸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걱정하지 않으면 즐겁고, 즐거우면 긍정적이고, 긍정적이면 활기롭게 살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노년의 내 모습이 그녀를 통해 그려졌다. 그녀는 아흔이 넘어도 여전히 호기심을 가지고 즐겁게 배우고 익히며 살 것 같다. 그렇게 그녀는 나의 두 번째 롤모델이 되었다.


가치관의 롤모델


나의 세 번째 롤모델을 만난 건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였다. 그녀의 정원은 아주 넓었고 풀을 뽑고 꽃을 심으며 땀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에는 힘듦과 기쁨이 함께 섞여 있었다. 머리가 허옇게 센 그녀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 같았다. 그녀 안에는 노동하는 사람의 건강함과 오랜 세월 마음의 힘을 키운 이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하고 반듯하고 청정한 마음이 있었다.


그녀는 낮에는 노비처럼 일하고 밤에는 학자로서 번역가로서 공부하고 있었다. 넓은 땅을 갖게 된 그녀는 그 공간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자 생각했고 그래서 서가와 쉼터와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을 지어 사람들과 함께 책 읽고 토론하고 공연을 구경하고 일하면서 그녀의 바람대로 나누며 살고 있었다.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누울 수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 전부였는데 그녀의 얼굴은 나누어서 행복하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뻐 보였다.


남보다 더 많이 갖고 싶고 남보다 더 우월해야 한다는 욕구가 기승을 부리는 사회에서 그녀가 사는 방식은 참 많이 다르다. 배움이 있고 명예가 있는 그녀가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았을텐데 그녀는 가지는 것보다 나누는 것을 선택했고 그 속에서 그녀는 충만하고 행복해 보였다.


더 많이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남보다 우월하고 싶은 욕망은 행복하고 싶어서일 텐데 사실 물질을 소유해서 얻는 기쁨은 일시적이다. 소유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을 나누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여타의 것들을 함께 나누는 데서 오는 행복감이 오히려  군불처럼 오래가고 은은함 속에 마음은 더없이 풍요로와진다. 진정한 행복은 마음의 풍요로움에서 오기 때문일 것이다.


나보다 먼저 태어나 참되고 아름다운 인생길을 보여주는 그녀의 삶에서 소유하기보다는 나누며 살아도 행복하구나, 아니 나누니까 오히려 더 많이 환하게 웃을 수 있고 더 마음이 충만할 수 있고 더 많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소유의 많고 적음을 떠나, 능력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저 그냥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누고, 나누며 살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으로 인생을 성실히 산다면 그게 행복한 삶이고 즐거운 삶이고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 그녀를 나의 세 번째 롤모델로 삼으며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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