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에서 다시 로마행 기차에 올랐다. 나폴리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나폴리뿐 아니라 고대 로마를 엿볼 수 있는 폼페이와 자연경관이 빼어난 카프리, 아기자기한 소렌토까지 경험했으니 3박 4일 동안 알차게 여행한 셈이다.
세 동생들과 여행 9일 차, 이제 내일이면 각자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로마로 향한다. 남동생들은 뉴욕과 런던, 여동생과 나는 한국, 각자 사는 곳이 다른데 이번 여행에서는 로마에서 만나 로마에서 헤어지기로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날 숙소는 한인민박으로 예약했다. 기차로 도착하니 테르미니역에서 가까워야 하고 공항 가는 교통편도 수월한 곳으로 알아보았는데 테르미니역 근처에 한인민박이 있었다. 한식을 선호하는 우리에게 아침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한인 민박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로마 한인민박집 외부
나폴리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15분 걸려 로마에 도착했다. 테르미니역에서 도보로 10분 걸리는 민박집을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나폴리 풍경이 다소 지저분하고 생활이 묻어난 건물들이 많다면 다시 본 로마는 역사 깊은 집안의 단장하고 나온 멀끔한 신사 같다.
우리가 찾아간 민박집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고풍스러움이 풍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주인장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간 방은 화장실이 딸린 가족실이었는데 4명이 들어가도 공간이 여유롭고 넓어서 좋았다.
짐을 풀고 우리는 동네 탐색을 하면서 중국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로마 3대 젤라토 맛집 중 하나가 있으니 꼭 가 보라는 주인장의 조언에 따라 파씨에 갔다.
로마의 파씨 젤라또
파씨의 젤라토는 쫀쫀하고 부드러웠는데 특히 리소(쌀) 맛 젤라토는 담백해서 내 입맛에 맞았다. 동생들도 먹어 보더니 맛있단다. 더구나 가격도 착하니 금상첨화였다.
로마 여행 막바지에 우리는 포폴로 광장에 가 보기로 했다. 광장이 발달한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로마에도 베네치아 광장, 나보나 광장, 스페인 광장과 같은 유명한 광장이 많은데 포폴로 광장은 국민광장이란 뜻으로 로마에서 가장 큰 광장이다.
기차가 다니기 전 북쪽에서 로마로들어오기 위해서는 포폴로 문을 거쳐야 했는데 바로 포폴로 문 앞에 만들어진 게 포폴로 광장이다. 건축가이자 도시 계획가인 주세페 발라디아가 설계해 1820년에 완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우리는 파씨 앞에서 트램을 타고 테르미니역까지 가 다시 지하철을 타고 플라미니오역에서 내렸다. 지하철역에서 올라와 포폴로 문을 지나니 500년 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파사드가 보인다.
화려한 성당들에 비해 외부 장식이 단순해서 좋았는데 아쉽게도 성당 문이 닫혀 있어바로크 시대 대표적인 화가 카라바조의 그림 두 점은 볼 수 없었다.
성당 앞에는 광활한 포폴로 광장이 수많은 인파들로 인해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광장 중앙에는 기원전 13세기 때 이집트에서 만들어져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가져온 높이 24m의 오벨리스크가 거대한 모습으로 서 있다.
핀초 언덕에서 본 포폴로 광장과 로마 풍경
여행객들로 바글거리는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우리는 포폴로 광장의 명소인 핀초 언덕으로 향했다. 4세기에 이곳의 땅 주인이었던 영주의 이름을 따 핀초 언덕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의 현재 모습은 나폴레옹이 로마를 점령한 당시 설계되었다.
포폴로 광장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핀초 언덕의 테라스에 이른다.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왜핀초 언덕이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덕이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는 풍경이었다.
더구나 날씨까지 도와서 봄날 오후의 청명한 하늘 아래 낮게 깔린 도시의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저 멀리 우뚝 솟아있는 성베드로 성당 돔이 보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인류가 만들어 놓은 오래된 문명과 자연이 만들어 낸 초록빛 나무들의 조화 속에서 포폴로 광장이 보이는 로마의 전망은눈이 호강이었다.
포폴로 광장의 버스킹 공연
다시 내려온 포폴로 광장에서는 버스킹 공연이 한창이었다. 건반을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젊은 가수의 음색은 부드러웠고 음악은 감미로웠다. 마음을 몽글거리게 하는 그의 음악을 듣기 위해 우리는 오벨리스크 계단에 앉아 한참 동안 음악을 즐겼다.
포폴로 광장에 와서 우연히버스킹 공연을 즐길 수 있어정말 좋았는데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의 앞날이 잘 되기를 바라며답례를 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로마 코르소 거리
17세기에 지어진 쌍둥이 성당산타 마리아 디 몬테산토 성당과 산타 마리아 데이 미라콜리 성당 사이의 길은 스페인 광장으로 이어지는 코르소 거리다. 고대부터 있던 길을 확장해 만든 이 거리는 15세기에 교황 바오로 2세가 이 길에서 경마를 허락해 그때부터 코르소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한다.
로마 스페인 광장
코르소 거리를 따라 쭉 걷다 보니 오드리 헵번의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 그리고 로마의 명소로 빠지지 않는 스페인 광장이 나온다. 우리가 갔던 지난 4월의 스페인 광장 계단은 붉은 철쭉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화사해서 너무 아름다웠다.
17세기에 스페인 대사관이 인근에 들어서면서 이름 붙여진 스페인 광장의 메인은 성 삼위일체 성당까지 이어진 계단인데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137개의 계단을 오르면 여기서도 로마의 전망을 바라볼 수 있다.
핀초 언덕에서는 포폴로 광장 너머 먼 도시의 고즈넉한 풍경이 압권이었다면 스페인 광장의 테라스에서는 광장에 모인 인파와 명품 샵들 때문일까, 화려하고 역동성을 지닌 로마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같은 도시인데 사뭇 다른 분위기가 새삼스러웠지만 그건 로마의 여러 가지 얼굴 중 일면일 뿐일 거라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넓은 계단에는 여기저기 사람들이 앉아 있는데 우리도 계단 한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넷이서 나란히 앉아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봄날의 철쭉을 바라보고 인파로 가득한 거리도 구경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스페인 광장을 즐겼다.
어느덧 어스름 녘이 다가오고 우리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