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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Jun 27. 2024

나폴리의 풍경과 사람들

50대 4남매의 나폴리 자유여행

로마에서 5박 6일을 머문 우리는 이제 나폴리로 향한다. 로마에서 나폴리까지는 기차를 탔다. 이탈리아 기차는 트랜이탈리아와 이딸로가 있는데 큰 차이가 없어서 전에 이용한 적이 있는 이딸로로 예매했다.


여행을 준비할 때 나는 여행 책자뿐만 아니라 여행블로그들을 읽어 보며 요즘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는데 이탈리아는 소매치기가 많아서 기차 안에서 여행가방마저 잃어버리기도 한단다. 그래서 좌석 예약비가 따로 있었지만 짐칸이 보이는 좌석으로 예매했다.

로마에서 나폴리 가는 기차 안에서 어반스케치

이탈리아의 기차는 시간대 별로 가격이 다르고 같은 시간이어도 좌석 배치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는데 로마에서 나폴리까지는 1시간 20여 분, 긴 시간이 아니어서 가장 싼 좌석을 선택했다. 결론적으로 이딸로는 쾌적했고 만족스러웠다.


나폴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2시 30분쯤이었다. 예약해 놓은 숙소에 가기 위해 가리발디 광장을 지나는데 불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나폴리 중앙역 근처는 지저분하고 분위기가 안 좋다는 블로그를 많이 보고 온 터라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려는데 덩치가 크고 나이 먹은 한 남자가 처진 어깨를 하고 앉아 있다. 취해서 멍한 상태로 앉아 있는 그의 주변  젖어 있고 지린내가 난다. 옷을 입은 채로 지렸는지 바지도 젖어 있었다.


나폴리에 도착하자마자 마주친 그 남자의 모습은 너무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대낮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광장에서 주변이 흥건해지도록 소변을 지린 채로 앉아 있는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지금도 그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불편한 광경 저편에 숨어있는 개인의 경험과 그를 둘러싼 사회 분위기와 시스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나폴리 숙소의 발코니와 주변 풍경

오래된 돌길 위에서 어렵게 가방을 끌며 숙소 앞에 도착했더니 먼저 우리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다. 아마 내 에어비앤비 프로필에 올려놓은 사진을 보고 게스트인 우리를 알아본 것일 게다. 우리가 머물 숙소의 체크인 시간은 오후 3시였지만 호스트는 일찍 도착한 우리를 배려해 주었다.


호스트는 수염이 덥수룩한 이탈리아 중년 남자였다. 그는 나폴리가 처음인 우리를 위해 맛집을 소개해 주고 여행 정보를 알려 주었다. 그의 친절과 배려, 시원스러운 제스처와 호탕한 목소리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폴리에서 먹은 피자와 파스타

호스트의 조언대로 가까운 곳에 맛집이 있어 점심을 먹으러 갔다. 평범해 보이는 동네 식당의 테이블은 거의 만석이었는데 여행자라곤 우리 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동네 맛집이었다.


피자의 원조 도시답게 화덕에서 갓 구운 마르게리따 피자는 쫄깃하고 모차렐라 치즈는 깊은 풍미를 가지고 있었다. 해물 파스타를 주문한 동생은 여태까지 먹어 본 파스타 중에 제일이라며 연신 감탄하며 먹었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 중 먹어 본 피자와 파스타 중 제일 맛있다는 평가는 재료의 신선함과 오랜 전통으로 만들어진 그들만의 레시피,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 때문일 거다.

나폴리 여행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톨레도역에서 내렸다. 톨레도 거리는 나폴리의 중심가로 알려져 있는데 정말 사람이 많았다. 노점상도 카페의 야외테이블도 골목도 물건도 많아 흥성거리는 분위기였다.


움베르토 1세 갤러리아

골목 구경을 하면서 남쪽으로 걷다 보니 눈에 띄는 건물이 있었다. 1880년대 후반에 지어진 아름다운 아케이드로 쇼핑센터인 움베르토 1세 갤러리아였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철과 유리를 이용해 돔으로 높은 천장을 만들었고 건물과 건물 사이곡선의 유리 덮개로 꾸며져 있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이었다.

플레비시토 광장

움베르토 갤러리아 근처에는 나폴리에서 가장 넓고 유명한 플레비시토 광장이 있다. 광장 중앙에는 로마의 판테온을 본떠 만든 산 프란체스코 디 파올라 성당이 자리하고 성당 양 옆으로는 로마의 산 피에트로 광장의 열주를 본떠 만든 회랑이 열 지어 있다.


성당긴 회랑, 궁전과 오페라 극장이 있는 사월의 봄날 플레비시토 광장에서 아이들 공놀이하고 강아지 뛰어다니고 여행객들 광장을 둘러보거나 계단에 앉아 다리 쉼을 하고 있었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풍경이었다. 

나폴리의 바다

광장 끝 전망대에서는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보이고 바다가 가까웠다. 바다를 끼고 있는 나폴리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로 알려진 산타루치아항이 있다. 실제로 보니 소문만큼 아름다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은 시원해졌다.


그렇게 발길 닿는 대로 다니다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운전기사는 머리가 허연 노인이었는데 그의 운전 솜씨가 평범하지 않았다. 혼잡한 도로를 뚫고 먼저 차를 들이밀고 건너편에서 차가 와도 양보가 없다. 하마터면 앞에서 오는 차와  부딪힐 뻔했는데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승객인 우리에게 미안한 기색도 없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폴리의 운전자들은 먼저 가기 위해 신호와 상대방 차를 무시하고 달리고 있었다. 우리는 택시 안에서 조마조마하며 목적지에 잘 도착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지만  난폭 운전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나폴리에 도착한 첫날부터 자유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거리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설렘과 긴장감, 생소함과 위험이 함께 버무려져 있는 일이란 걸 실감했다. 하지만 물가는 싸고 호스트는 친절하고 음식은 맛있으니 좋은 점도 많았다.


숙소에서 동생들과 저녁을 먹으며 반나절 동안 경험한 나폴리에 대해 이야기해 가면서 이 또한 추억이 될 거라고 웃으며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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