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의 풍경
지난 봄, 서울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모임이 저녁 시간이라 서울에 사는 동생과 만나 서촌에 갔습니다.
서촌은 동쪽으로는 경복궁, 서쪽으로는 인왕산, 남쪽은 사직단 앞길, 북쪽은 북악산으로 둘러싸여진 동네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이 가까워 사대부 등 권력자들이 거주하던 동네였다고 합니다.
그런 서촌이 2010년 한옥밀집지구로 지정되어 지금은 한국의 옛 정취와 현대성이 함께 공존하는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동네가 되었습니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려 서촌의 골목길로 들어서니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북적였습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가게들, 카페와 식당들, 오래된 한옥과 새로 지은 한옥들을 구경하며 이 골목 저 골목을 거닐었습니다.
그러다가 대오서점을 발견했습니다. 어반스케쳐들이 인스타그램에 많이 올려 알게 된 서촌의 대오서점입니다.
1951년에 문을 연 서점이라 역사가 오래되었고 오래된 만큼 건물은 세월의 흔적이 많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런 대오서점이 반가워 외관을 구경하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서점은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의 흐름 때문인지 옛날 책들로 둘러싸인 카페로 꾸며져 있습니다. 오래된 문고본 책들, 전집류, 창호지 바른 옛 창살문, 오래된 전축, 테이블과 의자마저 옛 것입니다.
대오서점은 옛날 물건들로 가득 해서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 했습니다. 60년대 후반에 태어난 동생과 저에게 어린시절의 추억이 깃든 이런 분위기는 너무도 익숙한데 그래서 대오서점은 정겹고 따스하고 묘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동생과 저는 커피를 주문해 마시며 안으로 향해 있는 또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습니다. 자그마한 마당이 있는 ㅁ자형 한옥구조인 안채가 보입니다. 옛 서점의 살림집이었을 그곳 역시 생활의 흔적이 오래된 물건들 속에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햇살 밝은 곳에 장독대가 있고,장독대에는 크고 작은 옹기들이 오순도순 모여 있습니다. 어린시절 우리집에도 장독대가 있었는데 저녁을 만들던 엄마가 가끔 된장이나 고추장을 퍼오라 심부름을 시키던 기억이 납니다.
계단을 올라가 장독대에 다가가서 옹기 뚜껑을 열면 독 안에는 거무죽죽한 된장이나 고추장이 있었습니다. 꾸덕꾸덕한 검은 빛깔의 고추장을 수저로 헤치면 그 안에 붉은 빛이 감도는 잘 익은 고추장이 얼굴을 내밉니다. 엄마는 그 장으로 여덟 식구의 삼시 세 끼를 챙기셨을 겁니다.
서울에 올라와 서촌 동네에서 장독대를 보니 어린시절의 일상이 추억이 되어 주변을 밝힙니다. 젊었던 부모님 모습이 떠오르고 이제는 볼 수 없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까지 함께 차오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날이 그날인 하찮아 보였던 일상이 어느 순간엔가 마법처럼 나타나 그리움과 안타까움, 정겨움과 따스한 기억을 동시에 가져다 줍니다.
한옥이 아기자기하게 자리잡고 있는 서촌에서 동생과 골목골목을 거닐었던 따듯한 봄날도 추억이 되어 드로잉으로 남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