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나는 열흘 간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6개월 전부터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여행 중에도 무사히 한국 땅에 발을 딛고도 일주일이 지나 pcr 테스트 결과가 음성이 나오고 나서야 한시름을 놓게 된 여행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뉴욕에서 오는 남동생, 런던에서 오는 남동생, 한국에서 출발하는 나와 여동생, 이 네 명 중 하나라도 코로나에 걸릴까 봐 조마조마함도 함께 가지고 있던 여행이었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여행 중에 우리는 바르셀로나에서는 지하철을, 타라고나 갈 때는 기차를, 몬세라트 갈 때는 버스를 타고 다니며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코로나 시대 3년째 접어든 시점에서 스페인의 관광지는 어디를 가든 사람이 많았다.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게 의무이긴 했지만 사람이 많은 곳으로만 다닌 셈인데 그럼에도 네 명이 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아서 정말 감사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려면 비행기 타기 이틀 전에 코로나 검사를 해서 결과가 음성이어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런던에 사는 남동생은 같은 유럽이라서 검사가 필요 없었고 뉴욕에 사는 남동생은 종류가 다른 pcr 검사를 24시간 이내에 해야 했다. 셋 중에 누군가가 양성이 나오면 여행의 막바지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바르셀로나의 거리
우리는 비행기 타기 이틀 전인 일요일 오전에 pcr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오후 6시쯤 이메일로 도착했다. pcr 검사 비용은 1인당 10만 원 정도로 비싼 편이었지만 모두 음성이어서 다행이었다. pcr 검사지는 프린트해서 가져 가야 비행기를 탈 수 있어서 다음날 람블라스 거리의 검사소로 찾아가 결과지를 받아 와야 했다.
코로나 시대의 스페인 여행은 뜻밖의 돈이 들고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되는 그래서 코로나에 관한 계획을 염두에 두고 일정을 짜야 할 만큼 신경 쓸 게 많았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대로 모두 비행기를 타고 각자의 생활 터전으로 돌아와서 오늘의 일상을 살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타라고나의 바다
스페인의 여행지에서는 보통 점심으로 오늘의 요리인 메뉴 델 디아를 먹었다. 타라고나에서는 배가 고파져 우리나라에서 하던 대로 12시쯤에 식당에 들어갔는데 2시에 오라고 한다. 덕분에 동네 한 바퀴 더 돌며 중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골목들을 구경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눈에 띄는 식당 아무 데나 들어가 점심을 먹었는데 메뉴 델 디아는 가격이 바싸지 않으면서도 맛이 좋았다. 첫 번째로 나오는 프리메로도 입에 맞았고 메인으로 나오는 생선이나 육류 요리도 다 맛있게 먹었다. 네 명이서 각자 취향이 다르니 다른 걸 주문해서 조금씩 맛보는 재미도 있었다. 스페인의 대표 간식 추로스도, 샐러드에 넣고 먹어 본 하몽도 먹을 만했다.
카페에서 먹은 빵과 커피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머물던 숙소 1층 카페에서 파는 1유로의 크로와상은 크고 바삭거렸고 1.50유로의 카페 콘 레체(카페라테)는 부드럽고 깔끔했다. 서둘러야 하는 날 아침에 우리는 1층 카페를 이용하곤 했는데 맛도 좋지만 아침 식사 가격으로 너무 좋았다. 여행지에서는 다리 쉼을 하거나 화장실에 가기 위해 카페에 자주 들렀는데 가는 곳마다 에스프레소는 좋은 향과 맛을 가지고 있었다.
저녁은 보통 집에 와서 만들어 먹었는데 숙소 건너편에는 슈퍼마켓이 있어서 장보기가 편했다. 야채와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를 사서 샐러드를 만들었고 딸기나 오렌지 사과를 사서 스페인의 과일을 맛보았다. 한국에서 싸 들고 온 김치와 참치로 찌개를 끓이고 김과 깻잎과 무말랭이 등과 저녁을 먹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남동생들도, 한식을 먹어야 입이 개운한 여동생과 나도 모두들 밥이 제일 맛있다며 점심에 먹은 메뉴 델 디아의 맛을 잊곤 했다.
피카소 미술관 내부
동생들과 함께 한 열흘 동안의 스페인 여행을 돌아보고 되새기며 써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석 달이 흘러갔다. 90일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그라시아 거리의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 구엘 공원과 고딕 지구의 피카소 미술관, 람블라스 거리와 레이알 광장 등을 반추했다.
몬세라트
몬세라트의 영험한 산을 회상하고 타라고나의 오래된 시간과 지중해와 정 많은 사람들도 떠올렸다. 산츠역의 풍경과 동네의 맛있는 크로와상과 에스프레소를, 에어비앤비 숙소의 편안했던 잠자리와 우리들의 이야기와 추억이 아른거릴 거실과 발코니와 다이닝룸도 떠올렸다.
20시간이 넘는 비행으로 나는 다리에 쥐가 나서 한참을 고생했고 두통으로 힘들기도 했다. 뉴욕에 사는 남동생은 허리가 아파서 돌아다니기 힘들어했고 런던에 사는 남동생은 며칠 동안 배탈이 나서 고생했다. 그렇게 우리는 부대끼는 몸을 달래며 여행을 다녔는데 그나마 그 정도여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더구나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다녀왔으니 천만다행이고 감사하다.
타라고나 대성당
여행의 일정은 내가 다 계획하고 동생들은 따라 줬는데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기꺼이 따라준 세 동생들의 마음이 고맙다. 그리고 작년에 세상을 떠나 함께 하지 못한 여동생이 생각 나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세상에 없어서 함께 하지 못 한다는 것은 언제 생각해도 슬픈 일이다.
오 남매가 사 남매가 되어 다녀온 이번 스페인 여행은 천천히 우리의 방식대로 조금 느리게 쉬어 가면서 진행했다. 일에 지쳤던 몸은 긴장을 풀고 힘들었던 마음은 여유를 갖도록 노력했다. 혈육을 잃은 상실감은 함께 나누고 마음에 쌓인 피로와 상처는 조금씩 치유해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또한 이번 여행은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독창적으로 풀어낸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만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한 신문 칼럼에서 시인 장석주는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에서의 새로움과 낯섦은 긴장과 설렘을 가져다주고 그러한 여행의 경험들은 일상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거나 반짝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거 같아 나는 그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을 잘 살기 위해서 그리고 익숙해져서 허무해지는 타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행의 하루는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언젠가 돌아올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