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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밀라의 집

자연을 닮아, 자연에서 온

by 밝은 숲

바르셀로나 여행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우리는 숙소를 나섰다. 산츠역 근처 동네는 어느덧 익숙해졌고 숙소 1층에 맛있는 커피와 크로와상을 파는 카페를 지나 야채 가게를 지나 동네 잡화점을 지나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일주일을 머물면서 10회권인 T-casual을 다 써서 여러 명이 같이 사용할 수 있는 T-family 표를 다시 발권했다.


목적지까지는 세 정거장이다. 바르셀로나 지하철도 처음에는 낯설더니 이제는 익숙해져서 탈 때 내릴 때 자동적으로 열림 버튼을 누르게 된다.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그리고 내일이면 떠날 생각에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로 향했다.


두 번째 오는 그라시아 거리는 조용하고 한가로웠다. 코로나 시대라서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 카사 바트요에 가던 날처럼 디아고날 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늘의 목적지 카사 밀라의 첫인상은 참 신기하고 독특했다. 그라시아 거리와 프로벤샤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지어진 6층 높이의 외관은 돌로 입혀졌는데 돌들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파동을 치고 있다.


무채색의 돌은 차갑지 않고 무표정하지도 않다. 오히려 카탈루냐 지방 산의 능선을 닮아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싱그러운 가로수의 초록빛과 더불어 자연스럽고 조화롭다. 신기함 속에 조화로움이 있고 독특함 속에 자연스러움이 담겨 있달까.


발코니의 난간은 가우디의 건축물이 그러하듯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이 없는데 철제를 자유자재로 구부리고 펼쳐놓고 한 모양이 신의 손길이 자연물을 빚듯 인간의 손길은 자유로움을 빚어 놓았다. 차가운 느낌을 가진 돌과 쇠가 곡선의 유형과 틀에 매여 있지 않은 모양으로 탄생돼 건물은 21세기 도심 속에서 선사 시대 예술품 같은 느낌이다.


현재 카사 밀라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건물이 지어질 당시 1910년대에는 외관의 독특함 때문에 언론의 조롱을 받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생긴 모양이 채석장 같다고 해서 지금도 카사 밀라는 <라 페드레라>라고도 불린다.

전날 예약한 표를 보이고 안으로 들어가니 1층에 제법 넓은 안뜰이 있다. 안뜰에서 바라보는 카사 밀라의 지붕은 파란 하늘인데 각각의 집에서 하늘이 보이고 햇볕과 바람이 들어오는 중정이 있음으로 집으로 자연을 들여올 수 있는 구조였다.


생활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게 설계한 가우디의 철학이 돋보이는 중정이었다. 더구나 창문에 얼비치는 노란색 다락층의 지붕은 바르셀로나의 푸른 하늘과 잘 어울려 멋스러움을 더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넓은 옥상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독특한 모양의 조형물들이 단독으로 혹은 무리 지어 여기저기 서 있다. 가까이에 있는 가우디의 다른 건축물, 카사 바트요처럼 카사 밀라도 옥상의 환기탑과 굴뚝, 계단참의 조형물이 예술 작품이다.


카사 바트요의 옥상이 트랜카디스 기법(타일을 바닥에 떨어뜨려 깨진 조각을 다시 이어 붙이는 방법)으로 만든 다채로운 색채 전시장이라면, 카사 밀라의 옥상은 몬세라트 바위산의 바위들을 재창조, 재조합해 만든 듯 기묘하지만 믿음직한 수호자들의 전시장이다.


옥상에서 바라본 중정의 지붕 또한 예사롭지 않다. 부드러운 능선처럼 넘실거리는 대지의 색을 입힌 지붕, 그 지붕들 사이사이에 채광과 환기를 위해 만든 다락층의 작은 창문들이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카사 밀라의 옥상은 실용적인 구조물이 가우디의 손길을 통해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승화되어 있는 야외 전시장이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와서 본 다락층은 붉은색 벽돌들이 포물선으로 아치를 그리면서 굽이쳐 흐르고 있다. 천장을 장식한 아치는 각각 높이가 다른데 옥상에서 본 지붕의 곡선 모양을 그대로 살려 높낮이가 다른 아치를 만들었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조명은 푸르고 채광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작은 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는 길은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결합돼서 신비로웠는데, 마치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비밀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 같았다.


붉은 벽돌의 포물선 아치가 아름다운 다락층에는 가우디가 디자인한 의자와 같은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고 가우디 건축물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카사 밀라의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다락층을 따라 내려가면 110여 년 전 주상복합 공동주택으로 지어진 이 건물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전시되어 있다. 넓은 거실과 다이닝룸, 개성 있는 철재 장식이 돋보이는 발코니, 메인 룸과 주방, 화장실과 다리미실 등 그 당시에 살았던 바르셀로나 부유층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준다.

철골 구조에 돌을 입힌 구조로 지어진 카사 밀라는 돌을 갈거나 쪼아서 곡선으로 이어 붙여야 하는 작업을 통해 외관이 만들어졌는데 안 맞으면 돌을 내려서 다시 갈고 이어 붙이기를 반복하면서 지어졌다 한다. 당연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천문학적인 공사비가 들었다. 건축주인 밀라 부인에게 공사비를 못 받은 가우디는 공사비를 받기 위해 재판을 했고 7년에 걸친 재판 끝에 공사 대금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받은 공사 대금을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공사비용으로 헌납하고 그 이후로는 대성당 공사에만 매진했다고 한다. 넓고 크고 독특하고 신기하기까지 한 카사 밀라는 그만큼의 우여곡절을 지닌 건축물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카사 밀라를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지하에 잠들어 있는 가우디는 어떤 표정으로 굽어보고 있을까. 애증을 가지고 바라볼 수도 있지만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창조적으로 풀어낸 카사 밀라를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경험하면서 느꼈을 그 마음을, 그들의 삶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재창조해서 구현해 내길 응원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장마가 지나가고 있는 계절에 지난 봄에 다녀 와 이제는 추억으로 저장된 카사 밀라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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