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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의 <시녀들> 중심으로

by 밝은 숲

2022년 4월 10일, 일요일의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했다. 목적지는 람블라스 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걸어가기로 했다. 골목길로 접어 들어 가우디의 첫 작품 가로등이 있는 레이알 광장을 지나 시청사가 있는 산 하우메 광장을 지나 팻말이 붙은 골목길로 접어 드니 오늘의 목적지,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


미술관 티켓은 온라인 예약도 가능하지만 현장에서 구매도 가능했다. 예약을 하지 않고 온 우리는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했는데 코로나 시대라선지 줄이 길지 않아 금방 입장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고딕 지구에 위치한 피카소 미술관은 13~14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석조 양식의 건축물로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은 1963년 피카소의 친구인 하이메 샤바르테스가 기증한 피카소의 그림을 전시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 미술관에 들어서니 피카소의 스케치와 그림을 담은 엽서들이 벽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벽을 가득 채운 피카소 그림 엽서들의 모음, 그 자체로 전시 효과가 느껴졌다.


1881년 스페인 남부의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어릴 때부터 그림그리기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고 미술교사인 아버지는 그에게 관찰하는 법과 사실적으로 그리는 법 등 그림 전반에 관한 조기교육을 해 주었다. 1895년 피카소가 열네 살 때 가족들이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피카소는 청년기를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왼쪽: 피카소의 자화상(1896년), 오른쪽 : <과학과 자비> (1897년 피카소 그림)

미술관에는 바르셀로나 시절 1896년에 그린 피카소의 자화상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해에 그린 어머니의 초상화와 아버지의 초상화, 그리고 1897년에 그린 <과학과 자비>라는 그림을 보면 십 대의 나이에 대가의 경지에 이른 피카소의 그림에 대한 재능을 엿볼 수 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1656년 (프라도 미술관)

피카소는 십 대 시절 마드리드에서 미술 공부를 하면서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1957년 그의 나이 76세 때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여러 가지로 변주하고 재해석한 피카소 버전의 <시녀들>을 무려 58점이나 그렸다.


그 중에 여러 점이 이곳 피카소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1656년에 그려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피카소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새로운 <시녀들>을 그렸다. 벨라스케스의 구도와 기본적인 색감은 가져오되 각각의 작품에서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생략했는지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피카소의 <시녀들>

예를 들어, 피카소의 어떤 <시녀들>은 온통 무채색인데 화면 왼쪽에 그려진 화가는 벨라스케스의 화가에 비해 공간을 장악하듯이 거대해졌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인물들은 단순해지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창들은 모두 열려 환한 빛을 안으로 들여오고 있다.

피카소의 <시녀들>

또 다른 <시녀들>은 벨라스케스의 구도를 가져오되 선과 선을 좁혀 그려 여러 가지 모양의 삼각형과 사각형 도형들로 캔버스와 인물과 공간을 표현했고 빨강과 파랑과 녹색을 많이 써서 색감이 화려한 <시녀들>을 그렸다.

피카소의 <시녀들>

벨라스케스가 사용한 어두운 배경을 가져오되 형태는 지극히 단순하게 색감은 빨강과 노랑과 파랑을 써서 아이들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시녀들>도 있다.

피카소의 <시녀들> 중 마르가르타

피카소의 <시녀들>에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속 인물 중 다섯 살배기 공주 마르가리타를 그린 초상화도 여러 점 있다. 얼굴 중심의 마르가리타, 상반신의 마르가리타, 전신의 마르가리타, 시녀와 함께인 마르가리타 등 여러 가지 버전이 있어 이 작품들 역시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


마르가리타를 그린 피카소의 붓터치는 마치 어린아이들이 그린 것처럼 형태나 모양에 얽매이지 않아 단순하고 거침없이 자유롭다. 또한 이렇게 많은 버전으로 <시녀들>을 그린 것을 보면 피카소가 벨라스케스를 존경하는 마음이 남다르다는 것, 그리고 피카소의 그림에 대한 무한한 실험 정신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미술관에는 도자기를 전시해 놓은 방이 따로 있는데 60대에 도자기에 흥미를 느낀 피카소가 만들고 그린 것들이다. 옛 궁정의 방처럼 꾸며진 도자기실에는 피카소가 만든 접시와 물병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도자기 속 그림들 역시 아이들 그림처럼 형태는 단순하고 문양은 자유롭고 색감은 태초의 어느 지점에서 가져온 듯하다.


피카소의 <시녀들>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알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라고 말한 것처럼 노년으로 갈수록 피카소의 그림은 자유롭고 단순해진다.


엘 그레코와 벨라스케스와 세잔을 거쳐 피카소는 복잡한 세계는 단순화시키고 정교한 장치는 풀어놓고 세밀한 묘사는 지워 버렸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에서 형태는 본질만 남고 색은 원형만 남고 선은 자유롭고 과감하게 느껴진다. 그의 바람대로 어린 아이가 그린 그림 같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대한 모든 것을 익히고 미술품 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그림이 팔려 부와 명예를 얻고 살았던 피카소가 돌아간 곳이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법이라는 것은 그림의 본질뿐만 아니라 삶의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게 한다. 결국 피카소는 삶의 본질, 인생의 본질, 우주의 본질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피카소의 <시녀들> 중 마르가리타

결국 삶이란 복잡하고 우중충한 것 같지만 본질은 단순하고 명쾌하고 무구하고 난만한 것이 아닐까. 어른이 된 우리가 지나왔지만 잊혔거나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어린아이였던 시절의 본질적인 혹은 본연의 마음, 그때의 마음을 되살리고 그때의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것, 노년의 피카소는 그것을 꿈꾸고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피카소 미술관을 나와서 고딕지구의 오래된 역사가 담겨 있는 골목길을 지나 일요일의 흥성거리는 레이알 광장을 지나 바르셀로나의 중심지 람블라스 거리를 지나서 동생들과 힐링하며 여행했던 바르셀로나의 봄날들을 지나서 지금 여기, 여름의 한가운데서 피카소의 그림들을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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