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 머문 지 나흘째, 오늘 우리의 여행지는 구엘 공원이다. 지하철 Vallcarca 역에서 내려 구엘공원까지 걸어가는 길은 꽤 가팔랐다.
김희곤이 쓴 <스페인은 가우디다>라는 책에 의하면 사업가 구엘이 바르셀로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라시아 지구 위쪽에 있는 농장을 사들여 최고급 전원주택을 지어 신흥 재벌들에게 분양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우디에게 설계를 맡기게 됐는데 해발 200여 미터에 위치해 있는 산등성이는 대지 경사가 심하고 바위와 동굴이 많아 집 짓기가 부적합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가우디는 1900년부터 14년에 걸쳐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지형의 특색을 살린 친환경적 공법으로 길을 내고 다리를 만들고 집을 지었다. 그러나 구엘의 죽음과 자금난으로 부자들을 위한 전원주택 사업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이 땅을 구입해서 지금은 바르셀로나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위한 공원이 되었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봄날의 바르셀로나 햇볕은 아침부터 뜨거웠고 날씨는 화창했다. 코로나 시대임에도 사람들이 많아 줄을 서서 표를 사고 입장해야 했는데 2022년 4월 8일 구엘공원의 입장료는 1인당 10유로였다.
구엘공원 정문 양쪽에는 두 동의 건물이 있다.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멋진 건물이다. 하나는 수위실로 하나는 사무실 용도로 지어졌는데 지금은 가우디 기념 박물관과 기념품 가게로 사용되고 있다.
펼쳐 놓은 야자수 잎 모양을 한 정문을 지나 타일 조각을 이어 붙인 알록달록한 도마뱀이 눈에 띄는 계단을 오르면 고대 그리스 시대의 아고라를 형상화해 낸 듯한 건축물이 보인다.
힘차고 육중한 도리아식 기둥 86개가 숲 속의 나무처럼 구불구불한 곡선의 천장을 받치고 서 있는 곳, 뜨거운 태양이나 비는 피하고 시원한 바람은 맘껏 맞이할 수 있도록 반은 열리고 반은 닫힌 고대 그리스 신전과 같은 이곳은 사람들이 장을 보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이용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다른 관광객들과 마찬가지로 신전을 거닐듯 위를 향해 힘차게 뻗은 원기둥의 숲을 거닐며 타일로 만들어진 천장의 작품들을 한참 동안 감상했다.
곡선으로 처리된 높은 천장은 트랜카디스 기법(타일을 바닥에 떨어뜨려 깨진 조각을 다시 붙이는 방법)으로 만들어졌는데 특히 해와 달과 별 모양의 둥근 장식물이 파란 하늘이나 푸른 바다를 표현한 듯 코발트빛으로 봄과 여름의 숲을 표현한 듯 다양한 그린색으로 풍요로운 대지를 상징한 듯 다크 옐로와 브라운 빛깔로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다.
나도 세 동생들도 말없이 조화로운 색감과 각각 특색 있고 아름다운 천장 디자인에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아 이곳저곳 거닐며 오래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다.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앞이 탁 트인 마당이 보이는데 그리스식 신전 옥상에 거대한 마당이 펼쳐져 있다. 마당은 운동장처럼 넓고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데 그 하늘마당에는 트랜카디스 기법으로 만들어진 유선형 벤치가 아름다운 색상을 타고 물결처럼 넘실거린다.
벤치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데 우리도 벤치 한 구석에 앉아 다리 쉼을 하면서 풍경을 감상했다. 어떤 젊은이는 넓은 마당 한가운데서 요가 동작을 하며 동영상을 찍고 누군가는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는 가만히 앉아서 풍경을 보고... 마음을 풀어놓고 이 시간을 즐기는 오늘의 우리도 구엘공원의 풍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늘마당 벤치에 앉아서 보니 야자나무 뒤편으로 아직도 탐험해야 할 산책길이 많았다. 동굴이 많은 지형이라더니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마치 동굴 속에 화장실을 만들어놓은 모양새였다. 자연의 지형을 최대한 살려서 만든 가우디의 철학이 살아있는 자연친화적인 화장실이었다.
땅의 경사가 심한 지형 때문에 가우디는 아치형 구조를 개발했다고 하는데 아치형 기둥이 축조된 공간은 아름다운 산책길로 거듭나 구엘 공원의 명물이 되었다.
산등성이에서 나온 돌과 흙으로 만들어진 아치형 산책길은 고대의 신화적인 이미지와 아직 오지 않은 자연친화적 미래 세계를 융합한 것 같다.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신이 보기에 좋은 곳, 인간이 보기에 아름다운 곳, 구엘 공원은 그런 곳이었다.
구엘공원은 해발 200여 미터 높이에 위치에 있어서 가파른 능선을 따라 숲 속 산책로가 꾸며져 있기도 하고 워낙 넓어서 여러 방향으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가우디는 산책로에 길마다 피고 지는 꽃들과 풀, 나무들이 자라는 환경을 보고 자연과 어울리는 조형물을 축조했다. 심지어 돌과 흙으로 세운 기둥과 기둥 사이에 돌을 이어 붙인 벤치를 만들어서 실용성과 자연미를 구현했다.
높은 산책로를 따라 올라갈수록 풍경은 좋아져서 멀리 바르셀로나 전경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그리고 더 멀리로는 지중해가 눈앞에 펼쳐진다.
공원을 품은 산과 도시와 바다가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화 한 점을 만들어낸다. 탁 트인 풍경 속에서 시원한 바람과 뜨겁게 내리쬐는 봄볕 속에서 구엘 공원은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자연과 더불어 평화롭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자연을 찾아내어 창조주와 협력하는 것뿐이다."
인간의 도시와 공원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100여 년 전 가우디의 철학이 다시 한번 깊게 다가오는 구엘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