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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바트요의 집

가우디의 건축물

by 밝은 숲

바르셀로나 여행 이틀째, 오늘은 카사 바트요를 예약해 놓았다. 바르셀로나의 섬유업자 조셉 바트요가 가우디에게 의뢰해 1906년에 리모델링을 완성한 바트요의 집, 그래서 카사 바트요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을 만큼 바르셀로나의 명물 중 하나인 건물이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이어 가우디의 건축물이 궁금해 일정에 넣었다.


예약은 전날 해 놓았는데 카사 바트요의 가격 때문에 많이 놀랐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26유로)보다 비쌌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한 2022년 4월 6일, 카사 바트요는 1인당 35유로, 원화로 5만 원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4명 분을 예약했다. 바르셀로나까지 와서 이 건축물을 안 볼 수는 없었다.


숙소에서 지하철로 세 정거장 가면 디아고날 역이고 거기에서 그라시아 거리 쪽으로 내려가면 카사 바트요가 있다. 디아고날 역에서 지상으로 나오니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바르셀로나가 처음인 우리는 카사 바트요가 어느 쪽인지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며 그라시아 거리를 걸었다. 그라시아 거리는 인도가 널찍하게 중앙에 자리 잡고 는 넓은 인도 양쪽으로 다니고 차도를 건너면 다시 상가건물이 있는 인도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차도를 넓게 만들어 차 중심의 길을 만든다면 바르셀로나는 인도를 넓게 만들어 사람 중심의 길을 만들었다. 바르셀로나의 중심지인 카탈루냐 광장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람블라스 거리, 위로는 그라시아 거리 모두 차도보다는 인도를 넓게 만들어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 좋도록, 산책하면서 벤치에서 쉬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쇼핑하고 먹고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의 중심지에는 자동차가 눈에 잘 띄지 않았고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고 코로나 시대임에도 북적거렸고 활기 차 보였다.


그렇게 거리 구경을 하면서 걷고 있으면 멀리서도 눈에 띄는 독창적인 건축물이 보인다. 거리로 향한 앞면이 좁은데 그럼에도 7층 높이의 건물은 100년이 넘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화사하고 산뜻하고 색채감이 풍부했다. 외벽에 붙여진 초록과 노랑과 파랑과 보라의 물결치는 듯한 색의 향연이 독특한 모양의 발코니와 채도 낮은 민트빛 창문과 어우러져 묘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황홀해지는 색감과 디자인을 지닌 예술품이어서 넋을 놓고 보게 되는 건축물이었다. 어떻게 가우디는 이렇게 환상적인 색감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디자인의 건물을 지었을까, 놀라웠다.


안으로 들어가서 2층으로 오르면 이 건물의 메인인 거실이 나오는데 널찍한 거실은 아치형 구조와 아름다운 돌기둥으로 내부와 발코니를 연결하고 있다. 유리창틀 모서리까지 물이 흐르듯 유연하게 곡선미를 살렸고 거실 천장은 곡선의 돌들이 소용돌이치듯 보인다.


자연을 닮은 내부의 곡선은 번화가가 주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자연 속에서 느낄 법한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또한 2층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그라시아 거리의 활기로움과 연둣빛 가로수의 싱그러움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제각각 물결치는 소용돌이 모양의 천장을 바라보거나 지중해의 다채로운 색을 담은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을 감상하거나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창 밖으로 그라시아 거리를 바라보면서 카사 바트요를 감상하고 있다. 나도 동생들도 다 말을 잃고 그저 바라보고 느끼고 예술품인 집을 카메라에 담았다.


계단을 오르면서 보이는 중정의 외관은 내가 경험한 바다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바다는 넓고 깊어서 수십 가지의 푸른색을 담고 있는데 맑은 날의 먼바다는 프러시안 블루로 수평선을 만들고 가까운 바다는 스카이 블루로 철썩거리며 포말이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싣고 오곤 했다. 흐린 날의 바다는 청회색으로 뒤척이기도 했고 무심한 날의 바다는 코발트 그린으로 잔잔하기도 했다.


가우디가 만든 중정의 외관은 바다를 닮았다. 낮은 층일수록 가까운 바다를 닮아서 연하고 채도가 낮은 블루색 타일을 사용했고 하늘과 가까운 층일수록 먼바다를 닮아서 프러시안 블루나 터키 블루, 코발트 그린색 타일을 사용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바라본 중정의 외관은 파랑의 그러데이션이었다.


카사 바트요의 중정은 날이 흐려서 뒤척이는 바다와 날이 좋아서 환호하는 바다, 평화로운 바다와 가라앉아 있는 바다가 모두 모여 있는 바르셀로나의 지중해처럼 보였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보이는 층마다 창문의 크기도 달랐는데 낮은 층일수록 창을 크게 만들었고 높은 층으로 올라갈수록 창문을 작게 만들었다. 해로부터 먼 아래층은 창을 크게 내어 일조량을 높이고 통풍이 잘 되도록 설계한 결과물이라고 하는데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이 자연의 혜택을 좀 더 누릴 수 있도록 층마다 다른 환경과 특성을 고려한 가우디의 섬세함이 구현된 설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우디가 설계한 카사 바트요는 어느 것 하나 똑같은 디자인이 없이 모두가 다르고 모두가 섬세해서 하나하나가 완성된 작품인데 그것들이 모여서 커지고 확장되면서 분산되고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덧 계단이 끝나면 건물의 옥상이다. 옥상 역시 가우디가 창조해 낸 예술품 전시장이다. 환기탑과 굴뚝을 형형색색의 타일로 조합해 꽃문양과 추상화를 만들어 내었다. 카사 바트요의 옥상은 바르셀로나의 봄볕으로 따사로웠고 세라믹 타일로 외부를 장식한 실용적인 예술품들은 4월의 봄 햇살 아래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을 뿜어냈다.


우리는 다리 쉼도 할 겸 옥상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나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서 카사 바트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가우디의 상상력과 장인정신에 대해, 섬세한 디테일과 전체적인 조화로움을 빚어낸 공들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막대 사탕을 처음 만들어 유명해진 스페인 회사 츄파춥스의 소유라는 카사 바트요, 그것이 누구의 소유든 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되어야 할 가치있는 건물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여정을 위해 거리로 나와 카사 바트요의 외관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으면서 우리는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가우디의 구엘공원과 카사 밀라가 남아있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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