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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타라고나 여행

역사와 생과 사의 공존

by 밝은 숲

2022년 4월 7일 바르셀로나 여행 3일 차, 오늘은 바르셀로나 근교 도시인 타라고나에 가 보기로 했다. 타라고나는 고대 로마의 유적지가 있고 중세의 골목길도 있고 바다도 볼 수 있는 도시다. 아직 로마에 가 보지 못한 여동생, 유럽이 처음인 남동생, 스페인이 처음인 나와 또 다른 남동생에게 이천 년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타라고나는 좋은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라고나에 가려면 산츠역에서 기차를 타야 한다. 바르셀로나의 봄날 아침, 하늘은 청명했고 쾌청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우리는 숙소에서부터 걸어서 5분 거리인 산츠역에 도착했다. 산츠역은 카탈루냐 지방 최대의 기차역으로 마드리드나 그라나다, 프랑스 파리까지 갈 수 있는데 우리가 가려는 타라고나는 일반 열차라 예매가 필요 없었고 좌석도 정해지지 않은 자유석이었다. 기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왼쪽에 앉으면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며 여행을 즐길 수 있는데 바르셀로나에서 1시간 10여 분 걸려 타라고나에 도착했다.


타라고나 기차역에서 바다는 지척이어서 우리는 해변가를 먼저 거닐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쪽빛 바다는 잔잔하고 평화롭고 한적했다. 4월에 내리쬐는 지중해의 햇볕은 생각보다 뜨거웠는데 지중해의 발코니라 불리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먼바다는 광활하게 넓었고 바다 끝으로 보이는 수평선은 탐험과 도전 정신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타라고나 원형경기장


타라고나 기차역에서 언덕을 타고 올라가면 2세기에 지어졌다는 고대 로마 시대 유적지인 원형경기장이 보인다. 로마제국 시대에 검투사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혈투를 벌였던 곳, 야생동물과 싸워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곳은 권력자들에게는 시민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검투사들에게는 목숨을 건 싸움터였다.


타라고나의 원형경기장은 1만 여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당시 타라고나의 위상을 알 수 있다. 더구나 타라고나 원형경기장은 넓게 펼쳐져 있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지어졌으니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타라고나 시민들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을 것이다.


원형경기장 한 켠에는 중세시대에 세워진 성당의 흔적도 남아있다. 론리플래닛의 책 <스페인>에 따르면 이 성당은 6세기와 12세기에 가톨릭 주교 프루크투오수스와 부제 두 명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이들은 AD 259년 이곳에서 산 채로 화형 당했다고 한다.


4월의 태양 아래 중세 시대의 성당은 석벽 몇 군데만 남아있고 원형경기장은 돌무더기의 잔해로 남아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타라고나의 원형경기장은 오늘, 스페인의 어린 학생들과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이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는 장소가 되었다. 나에게 원형경기장의 폐허는 돌무더기와 석벽의 흔적으로 말하는 옛사람들의 넋두리 같기도 했다.


오늘날 타라고나는 바르셀로나에 비해 작은 도시라서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한가로웠는데 대성당이 위치한 구시가지는 코로나 시대라 관광객이 줄어선 지 문 닫은 가게들도 많았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인솔 하에 현장 학습을 나온 스페인 어린이들의 생기로운 모습이 보이면 거리엔 어느새 활기가 돌았다..

타라고나 대성당


타라고나 대성당은 구시가지의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데 성당 팸플릿에 의하면 고대 로마제국 시대 신전이 있던 자리에 1171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331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성당의 앞면 파사드는 웅장하고 둥근 장미창은 아름다웠다. 성당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자세히 천천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중앙 회랑은 중세의 성당이 그렇듯 높고 어둡고 오랜 세월을 담은 기품이 느껴졌다.

타라고나 대성당 정원


복도 쪽 회랑을 지나면 정원이 나온다. 성당의 정원에는 주황빛 오랜지가 탐스럽게 열려 있고 작은 연못이 있고 잘 가꿔진 나무와 푸른 잔디가 있다. 무엇보다도 정원에서 바라보는 성당의 모습과 회랑의 아치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고즈넉한 멋이 느껴졌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오랜 역사를 품고서 이 고장 사람들의 생사고락을 함께 했을 타라고나 대성당의 시간들이 돌 하나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배어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관광객이 없어 한가로운 작은 예배실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둥근 돔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올려다보았다. 타라고나의 성당은 거대하지 않아서 친근하고, 번잡스럽지 않아서 평화로웠다. 복도를 장식하는 천장 교차 궁륭의 아름다움은 신에 대한 인간의 정성 어린 마음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을 나와 스페인의 점심인 메뉴 델 디아를 맛있게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구시가지에는 고대 로마시대 성벽이 남아있고 중세시대에 지은 건물들도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래서 타라고나는 고대의 유적지와 중세의 골목들, 지중해의 반짝이는 햇살까지 역사와 휴양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도시였다. 바르셀로나의 번잡함과 세련됨도 좋지만 타라고나의 평화로움과 고풍스러움도 매력적이었다.


오후 5시 반 바르셀로나행 기차가 늦은 오후 햇살이 반짝이는 타라고나 기차역을 향해 들어왔다. 다행히 기차에는 빈자리가 있었고 넷이서 마주 보면서 앉아갈 수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기차가 어느 플랫폼에 멈추더니 한참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기내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은 술렁대고 기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알아보는 사람들, 돌아와서 가방을 들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스페인 사람으로 보이는 한 중년 남자가 기차 밖에 나가서 알아보더니 들어와서 여행객인 우리에게 영어로 설명을 해 주었다. 사고가 났는데 누군가 자살을 했다고, 수습을 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기차가 언제 출발할지 모른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 가려면 버스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든지 아니면 언제 출발할지 모르는 기차에서 기다려야 한단다.


한꺼번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가 놀라워서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버스터미널은 더군다나 모르니 선택지는 기차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출발하겠지, 느긋하게 기다리자,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우리가 여행하는 사이 누군가 기차 철로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삶과 죽음이 같은 공간에 있고 같은 시간에 공존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우리는 기차에서 삶의 추억을 쌓으려 하고 누군가는 기차를 통해서 삶이라는 끈을 놓았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영혼을 생각했다.

타라고나 대성당 복도 회랑


기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근처에 앉아 있는 스페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에콰도르에서 스페인으로 이민 와 갖은 고생을 다 해가며 자식을 키우고 먹고 사느라 힘들었던 세월이 얼굴에 그대로 새겨져 있는 60대로 보이는 마리, 마리의 스페인어를 영어로 동시통역해 주며 여행객인 우리에게 호의와 친절을 베풀어준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친다는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중년의 다비드, 그들은 여행객인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 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누군가의 생이 마감된 곳에서 연민과 공감을 느끼며 소통하고 나눌 수 있었다.


이민자로서 마리가 살아온 녹록지 않았을 세월들이 두 남동생의 19년, 13년 차 되는 이민 생활과 겹쳐 보이면서 나는 마음이 찡했다. 다비드의 친절과 배려하는 마음에는 고마움과 감동을 느꼈다. 정직한 마리의 눈물 맺히는 이민사를 듣고 다비드와 남동생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사이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종착지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우리는 작별인사를 나눴다.


스페인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온 지금, 나에게 타라고나는 지중해 햇살이 반짝이는 이천 년의 시간을 담고 있는 여행지로 추억될 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곳 즉,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는 생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는 일의 유의미함을 들여다 보게 되는 곳이다. 더욱이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국적과 피부색과 언어와 사는 곳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끼리 공감하고 배려하며 연민을 함께 나눈 마음이 따듯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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