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4일부터 13일까지 열흘 동안 나는 세 동생과 함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그 주변 도시를 여행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성가족이라는 의미를 가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바르셀로나에서 첫 날인 4월 5일, 우리는 바르셀로나의 아침 거리를 처음 걸어보았다. 하늘은 맑고 날씨는 쾌청했다. 숙소에서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향해 T-casual표를 끊었다. 바르셀로나에서 8박 예정인 여행이라 우리에게는 1회권보다 10회권이 유리했다. 처음 타본 바르셀로나의 지하철은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리는 구조였다.
바르셀로나 지하철
코로나 시대라서 바르셀로나 사람들도 지하철 안에서는 거의 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거리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도 많았지만 안 쓴 사람도 많았는데 런던에서 온 동생도 영국은 코로나를 감기처럼 취급하는 분위기라며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안 쓰고 다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철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내 눈앞에는 거대하고 장엄한 피사체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건축물이었다. 돌이라는 자연의 재료로 인간과 역사와 신의 이야기를 섬세하면서 웅장하게, 정성을 다한 거룩함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서 14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공사 중인 성당을 보는 순간 시간의 힘과 인간의 노력과 정성, 기술과 상상력이 만들어 놓은 피사체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김희곤이 쓴 ‘스페인은 가우디다’라는 책에 의하면, 건축가 가우디는 31살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공사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책임자로서 그는 1891년 성 요셉 영성회 회원들에게 버섯 모양의 탑들이 하늘을 향해 삐죽삐죽 솟아 있는 스케치 한 장을 들고 성당의 구조와 평면 구성, 외벽면 장식, 지붕의 탑에 이르기까지 사진을 보고 말하듯 자세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가우디는 이전에 건축 설계를 맡았던 비야르의 고딕 양식 도면을 해체하고 동, 서, 남 각각의 정문에 독특한 양식과 디자인을 가진 4개의 탑을 세웠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인 12 사도를 표현하는 것으로 오늘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개성을 나타내는 삐죽삐죽한 곡선의 첨탑이다.
성당의 동쪽 파사드
우리는 동쪽의 탄생 파사드를 시작으로 서쪽의 수난 파사드, 지금도 공사 중이어서 폐쇄되어 있는 남쪽의 영광 파사드까지 성당을 전체적으로 보기 위해 멀리서 성당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성당 옆에 있는 가우디 광장으로 향했다. 이 광장에는 연못이 있는데 연못에 비친 성당과 본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동쪽의 파사드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천상의 세계처럼 아름다웠다. 그래선지 연못 주변에는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도 그들 사이에 끼여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인생 샷을 남겼다.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터넷으로 예매를 해야 하는데 나는 비행기 타기 사흘 전에 예매를 해 놓았다. 입장료는 원화로 3만 5천 원 정도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만큼 인류가 보존해야 할 가치 있는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입장료가 성당 공사 비용으로 사용된다니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11시 30분으로 예약한 우리는 코로나 시대임에도 길게 줄 서 있는 인파에 놀랐는데 다행히도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다.
서쪽의 수난 파사드
가까이서 보는 성당 외벽의 조각들은 성서 속 이야기로 가득했다. 가우디가 만든 동쪽의 탄생 파사드에는 성당 이름인 성가족의 모습과 천사와 나팔, 동방 박사들과 목동, 당나귀와 오리까지 모든 외벽을 섬세한 곡선의 조각으로 채우고 있었다.
가우디 사후에 수비라치가 만든 서쪽의 수난 파사드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모습을 중심으로 로마 병사와 말, 고통에 휩싸여 있는 베드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예수님, 배신하는 가롯 유다의 모습까지 직선의 단순한 조각미가 특징이었다.
동쪽과 서쪽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가우디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자신의 방식대로 곡선미를 이용하고, 그를 이어받은 수비라치는 또 그의 방식대로 단순하고 직선적인 조각 방식을 이용했다. 곡선과 직선은 성서 속 예수님의 탄생과 수난을 통해 조화롭게 이어지고 그들은 그들 시대에 걸맞은 방식으로 재해석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삶과 죽음, 즉 살아가는 방식과 죽어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하니 나는 그것이 성당 전체의 조화이고 균형이라 생각한다.
성당의 내부는 1만 3천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로 설계되었다는데 위를 향해 쭉 뻗은 기둥들은 하늘로 치솟아 오를 수 있을 것만 같이 높다. 높이 솟은 돌기둥은 숲 속의 나무처럼 가지를 뻗고 가지와 가지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천장에는 가지 사이에서 꽃이 피어나고 나뭇잎들 역시 서로가 서로를 조화롭게 연결시켜주고 있다. 마치 이곳은 햇빛 잘 드는 숲 속 같은 천국인데 하나하나 돋보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서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는 의미 같다.
다양한 색깔로 빛을 발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초록으로 파랑으로 빨강으로 노랑으로 분홍으로 햇빛을 내부로 들여와 환하게 밝혀준다. 에덴동산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천국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관람객들 속에서 성당을 둘러보고 느리게 거닐면서 신의 영광과 환희는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성당의 내부와 외부를 구경하면서 나는 이렇게 독창적이지만 친근하고, 거대하고 장엄하지만 주눅 들게 하지 않는 상상력은 어디서 나온 걸까 궁금했다.
가우디는 어린시절부터 류머티즘과 관절염으로 고생했다고 하는데 몸의 아픔과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영혼을 성숙하게 하고 내면을 깊이있게 만들어 자연의 본질과 생과 사의 본질을 담아 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을 창조해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926년 가우디는 75세에 전차에 치여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전 재산과 노력과 열정을 들여 짓고 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지하 제단에 잠들어 있다. 지하 제단까지 가볼 수는 없었지만 그가 주춧돌을 놓고 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성당에서 나는 햇빛이 밝고 따사롭게 온 세상을 비추는 것 같은 천상의 모습을 보았고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성당 의자에 앉아서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예수님의 뜻을 생각했다. 자연의 빛을 통해 무지개 색깔로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세상 곳곳에 평화와 기쁨이 평등하고 조화롭게 비출 수 있기를 기도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첫날, 우리는 성당을 나와서 바르셀로나의 중심지인 카탈루냐 광장을 거쳐 람블라스 거리를 따라 콜론 동상이 있는 바다까지 걸었다. 엄마가 암에 걸려 돌아가시 전에 엄마와 함께 오남매가 처음으로 경주여행을 다녀온 후 남은 4남매가 처음으로 스페인 여행을 왔는데 모든 것이 처음이어서 낯설고 서툴렀지만 함께 경험하고 공유해서 소중한 시간으로 남게 되었다.
특히 가우디가 만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거대하고 장엄하지만 친숙한 아름다움,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자연을 품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서 나에게는 잊지 못할 성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