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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서 에어비앤비 경험기

숙소에서

by 밝은 숲

바르셀로나 공항의 입국 심사는 코로나 시대답게 까다로웠다. 여러 가지 질문이 주어지고 스페인 입국 시 필요한 Spth(Spain travel health) QR코드와 백신 접종증명서 그리고 돌아갈 비행기표까지 보여 주고 나서야 공항을 나설 수 있었다.


택시에서 바라보는 스페인의 처음은 낯설어서 신선했고 거리는 점점 그라피티의 화려한 색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에스파냐 광장을 지나 산츠역 근처에 도달하니 구글 지도에서 보던 거리 모습이 나타났고 여동생과 나는 에어비앤비로 구한 숙소가 있는 건물 앞에서 내렸다. 공항에서 출발해 20여 분 거리였다.


9층짜리 아파트 건물에 우리가 머물 집은 8층이었는데 스페인 방식으로는 6층이었다. 호스트는 친절하게도 한글 번역기까지 동원해 집 사용법을 알려 주었고 나는 처음 만난 스패니시에게 한국의 전통 부채를 선물했다. 한지에 분홍빛 매화꽃이 그려진 대나무 살 부채가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가져간 거였다.


집 열쇠를 건네 준 호스트는 돌아가고 동생과 나는 그제야 처음 경험하는 바르셀로나의 집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열쇠로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좌측에 신발장이 있고 앞에는 긴 탁자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복도가 있다.


복도의 왼편에는 세 개의 문이 있는데 첫 번째 문을 열면 주방이다. 주방은 그리 넓은 편은 아니지만 일하기 쉬운 구조로 싱크대가 벽에 붙어 있지 않고 부엌 가운데에 위치해 있어서 싱크대를 중심으로 이쪽과 저쪽에서 일할 수 있게 구성되어 효율적이었다.


두 번째 문을 열면 화장실이다.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는 건식 화장실, 아쉬운 점은 세면대가 작고 좁다. 화장실 자체가 넓진 않아서 작은 세면대를 놓은 게 아닌가 싶은데 비행기 세면대보다 더 작아 아동용 세면대가 아닐까 싶었다. 세면대에서 물을 사용하려면 고개를 거의 벽 쪽에 붙이고 세수를 해야 했다. 안 그러면 물이 바닥을 적신다. 이 집을 사용하면서 가장 불편했던 점을 꼽으라면 바로 화장실의 작은 세면대가 아닐까 싶다.



복도가 끝나는 곳은 꽤나 널찍한 다이닝 룸으로 의자 4개와 함께 둥근 식탁이 놓여 있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아침으로 북엇국이나 저녁으로 된장국을 끓여 먹었다.


여동생과 나는 김치와 반찬, 된장이나 고추장, 액젓과 같은 양념들을 가방 가득 가져와 적어도 하루에 한 끼는 한식으로 먹고 다녔다. 스페인의 점심인 메뉴 델 디아가 아무리 맛있어도 집에 와서 저녁으로 해 먹은 김치찌개나 라면, 누룽지 밥이 더 좋았다. 전에 엄마가 말씀하시곤 했던 밥을 먹어야 입이 개운하다는 말의 의미를 나는 나이 들수록 점점 실감하고 있다.


다이닝 룸에서 저녁을 먹으며 우리 4남매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머나먼 곳에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며 사느라 못 만났던 시간들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 간 지 13년째 되는 남동생은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며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짐의 무게도 조금씩 줄어들거나 내려놓고 있었고 지혜를 발휘해서 문제를 잘 해결하며 살고 있었다. 부모님을 보내 드리고 코로나 시국에 여동생도 보내면서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마음을 풀어놓고 지혜롭게 성장하면서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쌍둥이 남동생들은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된 데다가 사는 게 녹록지 않아 자주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살아계실 때 부모님의 일상적인 삶과 이야기들을 궁금해했다. 아버지와 엄마의 일상과 성격과 각자가 겪은 부모님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웃고 놀라고 공감했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딘가 많이 닮아있는 부모님의 유전자를 나는 동생들에게서 확인했고, 동생들은 또 나를 통해서 엄마나 아버지의 유전자를 보았을 것이다. 그건 묘한 동질감이자 설명하기 힘든 애틋함이요 그리움이기도 했다. 이제는 두 분 다 돌아가셔서 이 세상에서 만나 뵐 수 없는데 그리움은 혈육을 통해 보이고 그것이 묘한 동질감과 더불어 애틋함을 불러오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집에는 다이닝 룸에서 이어지는 복도가 또 하나 있다. 복도 왼쪽에는 싱글 침대 하나, 옷장과 이불장을 겸할 수 있는 장이 놓여 있는 방이 있다. 이 방은 여동생이 쓰기로 했다.

이 방의 창문을 열면 스페인 공동주택의 특징인 중정이 보인다. 우리가 빌린 아파트는 한 층에 총 4가구가 사는데 중정은 넓지 않아서 건넛집의 빨래가 가까이 보이고 아래층과 위층과 옆집의 창문도 가깝게 느껴진다. 중정이 있음으로 집 곳곳에 햇빛이 들어 오고 통풍 효과를 가져와 자연을 집 구석구석에 들일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복도 오른쪽에 첫 번째 문은 더블침대와 옷장이 있는 메인 룸이다. 커다란 창 밖으로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침의 동트는 하늘과 오후의 따듯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방이다.


나와 두 살 터울인 여동생은 여행을 계획하고 추진하느라 애썼다며 나에게 큰 침대가 있는 방을 양보했다. 동생의 배려 덕분에 나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내내 햇빛 좋은 방의 넓은 침대에서 편안하게 잘 자면서 구경 다닐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복도 오른쪽 두 번째 문은 싱글 침대 두 개와 장이 놓여 있는 세 번째 방이 있다. 이 방 역시 창 밖으로 가로수와 하늘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 방은 쌍둥이 남동생들이 사용했다.


남동생들 역시 몇 년 만의 만남이어서 할 이야기들이 많았는지 방에 들어와서도 밤늦도록 도란도란거렸다. 더구나 쌍둥이로 자라 어린 시절을 함께 공유한 역사가 있고 서로의 관심사와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전화로는 전해지지 않는 속 얘기들을 하면서 회포를 푸는 시간을 이 방에서 가졌을 것이다.


복도 끝에는 샤워실을 갖춘 두 번째 화장실이 있다. 이곳의 세면대는 널찍한 대신 높다. 유럽의 카페나 공중 화장실을 가 봐도 이렇게 높은 세면대는 본 적이 없는데 나와 여동생이 세수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그래서 이곳은 자연스럽게 남동생들이 사용했다.

복도를 나와 다이닝 룸을 거쳐 왼쪽에는 넓은 거실이 있다. 벽에는 TV가 달려 있고 스패니시 풍의 그림도 걸려있고 소파와 탁자가 갖춰져 있다. 우리는 이 집에 머물면서 석양빛을 받으며 혹은 어둠이 깃든 고요함 속에서 거실에 앉아 많은 얘기를 나눴다.


외국에 살아서 그리고 코로나 시대라서 만나지 못했던, 남동생들에게는 누나인 소연이가 어떻게 아팠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고 장례는 어떻게 치렀는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소연이의 삶과 죽음을 얘기하다가, 혈액암 전이로 음식이 들어가지 않아 너무 말라서 세상을 떠난 동생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코로나로 인해 지인들의 문병도 가족들의 얼굴도 자주 못 보고 외로운 병치레를 하다가 떠난 동생이, 나보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뜬 동생이 가여워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우리는 먼저 보낸 혈육, 소연이를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추모하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발코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런던에 사는 남동생은 늦은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발코니 의자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4월의 햇볕은 따사로웠고 런던에서는 흐린 날이 많아선 지 어느새 동생은 웃통을 벗고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해를 보기 어려운 곳에서 살기에 햇빛이 쨍쨍할 때 비타민 D를 맘껏 흡수하고 싶다는 욕구가 19년째 런던에 살면서 생존 본능으로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거실에 있던 우리는 웃통 벗은 남동생 모습이 새삼 신기하고 놀라워서 유러피언이 다 됐다며 웃음꽃을 피웠다.


거실 문 밖 발코니에는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눈앞에는 동이 트거나 파랗거나 해질 녘의 하늘이 펼쳐지고, 건너편에 스페인 사람들의 일상이 배어 나는 높지 않은 아파트들이 서 있고, 키 큰 가로수가 연초록으로 물들어가고, 거리에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번잡스럽지 않게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낯설면서 일상적이고 이국적이면서 여유로운 풍경들이다.


이 풍경 속에서 우리는 이방인이기에 처음 접하는 문화에 도전하면서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었다. 또한 바르셀로나의 일상에 동화되기도 하면서 중년의 나이라 조금씩 삐걱거리고 골골거리는 몸을 부여잡으며, 흥미롭고 새롭고 헤매기도 하는 열흘 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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