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스페인에 있다가 다시 돌아온 고향 땅은 봄으로 만개해 있다. 열흘 동안의 여행이었는데 이곳의 일상을 꺼 두고 스페인 여행에 몰두해 있다 와서 그런지 어느새 활짝 피어 있는 노란 민들레도 반갑고 벌써 피었다 떨어져 있는 벚꽃잎도 새롭다.
작년 봄에 나는 오 남매 중 셋째인 여동생을 떠나보냈다. 외국에 사는 남동생들은 누나의 장례식에 오지 못했다. 8개월 만에 간 누나의 아픈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병문안 한 번 와 보지 못해서 작별인사마저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코로나 시국이 가져다준 비극을 우리 오 남매는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함께 슬픔을 나누지 못한 것은 서로에게 아픔이어서 기회가 되면 언제 한번 모여야겠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것이 여행지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행스럽게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작은 유산이 있어서 그걸로 여행비는 충당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여동생을 떠나보내고 5남매가 아닌 4남매만의 여행이 계획되었다.
혈육을 잃은 슬픔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은 코로나 시국이라는 것도 큰 장애물로 느껴지지 않았고 될 수 있으면 빨리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여서 6개월 전에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숙소를 알아보았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도시이고 가우디의 건축물이 인상적인 도시라서 그리고 아직 가 보지 않은 도시라서 동생들에게 의견을 묻고 선택하게 되었다.
여행 기간은 뉴욕에서 빡빡하게 일하는 남동생이 일주일을 낼 수 있다 해서 거기에 맞췄고, 새벽에 도착하는 남동생을 배려해 우리는 하루 먼저 도착하는 일정으로 계획을 세웠다. 4명이서 먹고 자고 구경 다니고 이야기하면서 8일 동안 보내려면 공간이 좀 여유로워야 했다. 그래서 침대 4개, 화장실이 2개인 집 전체를 빌리는 에어비앤비를 알아보았다. 에어비앤비는 처음이라서 딸에게 도움을 청해 먼저 회원 가입을 했다. 사진 캡처하는 방법도 딸에게 배워 동생들에게 숙소에 대한 사진도 공유하면서 재미있게 알아보았다.
머물고 싶은 도시와 날짜를 고르니 숙소의 형태와 사진과 편의시설들, 주변 여건, 지도와 더불어 호스트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제시되어 있었다. 구글 지도와 숙소 위치를 번갈아 살펴보면서 바르셀로나의 구역을 익혔다. 바르셀로나의 중심지인 카탈루냐 광장 근처와 에스파냐 광장 근처, 에이샴플라 지역, 드레타 데 이샴플레 지역, 고딕지구, 라발 지구,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근처, 구엘 공원 근처 등등.
그리고 선호하는 구역과 가격을 비교해 보았다. 가격이 맘에 들면 지하철 역에서 멀거나 집이 좁았고 숙소가 맘에 들면 비싸거나 변두리였다. 그래서 적정한 가격과 편리한 교통편과 집의 깔끔함과 조용한 잠자리와 같은 원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조용한 잠자리였다. 우리는 50대 중반과 40대 후반의 나이여서 건강을 살피며 잘 자고 잘 먹고 다니는 여행이어야 했다. 그래서 소란스러울 수 있는 카탈루냐 광장 쪽과 시내 쪽은 피했다. 대신 지하철 역이 가까운 곳으로 알아보았다. 첫 번째로 에스파냐 광장 쪽을 알아보았는데 공항버스가 서는 정거장인 데다가 지하철 역이 있고 관광지에서도 멀지 않은 좋은 위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격이 괜찮고 집 상태도 괜찮은 것들을 저장해 놓고 며칠 보고 있으면 금세 물건이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 벌써 예약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괜찮은 집이 나오면 예약을 미룰 게 아니었다. 서둘러서 예약을 하는 게 낫다는 교훈을 얻었다.
숙소에서 보이는 거리 풍경
여러 군데를 며칠 동안 계속 알아보고 있는데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었다. 에스파냐 광장 쪽은 너무 비싼 물건들만 나와서 산츠역 근처로 알아보았다. 산츠역은 지하철도 있지만 기차역이 있어서 근교 도시로 여행하기에 좋은 위치였다. 더구나 내가 알아보고 있는 숙소는 마트가 건너편에 있고 지하철 역이 가까이에 하나 더 있었다. 거실과 다이닝 룸은 넓었다. 공항에서 올 때 공항버스는 못 타게 되었지만 택시 타면 30유로 정도라고 하니 동생과 둘이니까 그리 큰 부담은 아니었다. 가격은 여태 보고 있었던 집들보다 좀 셌지만 점점 오르고 있으니 빨리 예약해야 했다.
그렇게 우리의 에어비앤비 숙소는 산츠역 근처로 22년 4월 4일 체크 인, 12일 체크 아웃하는 걸로, 만나기 6개월 전에 예약을 끝내 놓았다.
비행기표를 끊어 놓고 숙소를 예약해 놓긴 했지만 코로나가 장기화되어 가고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 수가 증가하고 있던 터라 6개월 동안 주시하며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아야 했다. 입국과 출국 때 필요한 서류들, 예를 들어 스페인 입국 시 필요한 Spth와 접종증명서나 pcr검사지가 필요한 지 알아보아야 했다. 그리고 입국 시 필요한 pcr 테스트를 바르셀로나의 어느 곳에서 받아야 하는 지도 계속 알아보아야 했다. 또한 스페인에서 pcr이 양성 나왔을 경우의 수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영국에서 오는 동생과 미국에서 오는 동생이 있으니 그곳 상황도 예의 살펴보고 상황 변화를 체크해야 했다.
넷 중에 한 명이라도 못 오게 될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닌 코로나 시국이었다. 더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 중이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동생들과 만나 여행하는 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을 비워야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바르셀로나에 대한 여러 권의 책과 스페인 전체에 대한 여행 책자를 읽고 여행 계획을 세웠다.
코로나 시국이라 어느 것 하나 쉽게 흘러가는 건 없었다. 비행기표도 6개월 전에 핀에어를 예매해 놓았는데 떠날 날짜 50일을 앞두고 비행기표가 변경됐다는 이메일이 왔다. 4월 4일 비행 날짜가 3일로 변경되었다는 내용이므로 내가 예약한 4일 자 비행은 없어졌다는 얘기였다. 숙소도 다 예약해 놓은 상태에서 그들의 변경 시간을 맞출 수는 없어 취소를 요청했다. 그리고 다른 항공사 편을 알아보았다.
카타르 항공편이 가격도 적당하고 20시간이 걸리지만 경유지에서도 여유가 있어서 그걸로 예약했다. 이 항공기는 제발 시간 변경이 없기를 바라면서...
그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시작했고 유럽 항공 노선들은 줄줄이 취소되었고 나는 핀에어의 변덕 덕분에 미리 카타르로 갈아타서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3월은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서 스페인 입국 시에 Spth뿐 아니라 백신 접종 증명서가 필요해진 상황이었다. pcr검사를 요구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동생과 나는 무사히 비행기에 올랐다.
새벽 1시 30분 발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대부분 자리가 차 있었다. 마스크를 쓴 채 10시간을 날아 도하의 하마드 공항에 도착했다. 동이 트는 도하의 지평선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 이국적이었고 하마드 공항은 넓고 세련되었다. 그리고 2시간 30여분 기다린 후 거의 꽉 찬 비행기를 타고 8시간을 날아간 끝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2022년 4월 4일, 21시간의 비행으로 몸은 지쳤지만 한낮의 바르셀로나는 화창했고 하늘은 청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