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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몬세라트

카탈루냐의 성지

by 밝은 숲

인간의 역사는 자연의 역사에 비해 아주 어리고 미숙하다. 그래서 인간은 태고 적 신비를 지닌 자연을 만나면 그 장엄함에 겸손해지고 그 웅장함에 낮아지고 그 광활함에 마음이 툭 트이고 커지는 것을 느끼게 되나 보다.


바르셀로나에 머물면서 근교에 있는 몬세라트를 다녀왔다. 바르셀로나에서 도시 문명을 경험하고 타라고나에서 드넓은 바다를 보았다면 몬세라트에서는 스페인의 산과 바위와 들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몬세라트는 카탈루냐의 수호성인 검은 성모상이 있는 수도원과 바실리카가 있고 세계 3대 소년 합창단 중 하나인 에스콜라니아 소년 합창단의 성가를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22년 4월 9일 바르셀로나 여행 닷새째, 아침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은 소슬해서 기분 좋은 봄날이었다. 대중교통으로 몬세라트에 가려면 기차나 버스를 타야 하는데 숙소에서 가까운 산츠역 옆에 몬세라트 가는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우리는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는 하루에 한 번 운행하는데 아침 9시 15분쯤 출발했던 거 같다. 더구나 4명이서 23유로에 수도원 입구까지 갔으니 기차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앞에는 사진에서 보던 기묘한 모양을 가진 바위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높이 1,236미터의 돌산인 몬세라트는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이름답게 큰 바위들이 톱니처럼 삐죽삐죽 솟아있다.


흰 구름이 뭉실뭉실 떠 있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초록빛 나무들과 더불어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바위산의 모습은 웅장하고 신비로웠다.


버스는 산의 능선을 타고 구불거리며 도로를 올라가는데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도로 가장자리는 낭떠러지여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금방이라도 밑으로 곤두박질칠 거 같아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은 사고를 확장시키고 생각을 깊이 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불안과 걱정으로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이럴 때는 먼 전경으로 눈을 돌려 카탈루냐 지방의 풍경을 바라보거나 버스의 목적지인 몬세라트 바위산에 세워진 수도원을 바라보는 게 낫다.


1시간 10여 분 정도 걸려 버스는 수도원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725미터에 위치해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은 1,025년에 목동들이 발견한 목각으로 만든 성모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검은 얼굴의 성모상은 수세기 동안 기적을 일으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1881년에 교황 레오 13세는 검은 성모상을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으로 인정했다. 순례자들은 성모 마리아가 들고 있는 공을 만지며 소원을 빌거나 치유가 되기를 기도하는데 우리가 갔던 날도 검은 성모상을 보기 위해 순례객들의 줄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몬세라트는 6만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으로 2천 개의 등산 코스가 있다. 관광객을 위해 트레킹 코스에 두 개의 푸니쿨라가 만들어졌는데 산타 코바행은 가우디의 조각상을 비롯한 15개의 조각상이 있는 길이고 산 호안행은 풍경이 좋은 길이다. 우리는 좋은 풍광을 보기 위해 산 호안행 푸니쿨라를 탔다.

푸니쿨라를 타고 산꼭대기 가까운 곳으로 올라가니 멀리서 바라보던 톱니 모양의 바위들이 둥글고 가깝게 다가왔다.


거대한 바위들이 여기저기 이어져 있고 그 사이로 봄햇살을 받고 부드러워진 바람을 맞으며 활엽수와 작은 풀들은 초록색 잎을 키워가고 있다.


먼 풍경 속에서 카탈루냐의 들녘은 푸른 생명력으로 가득하고 산의 능선은 완만해서 우리나라의 부드러운 산등성이를 닮아 있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자연은 고향의 산과 들을 연상케 해서 친근하고 편안했다.


산자락 아래 펼쳐지는 아름답지만 아찔한 풍광들을 바라보며 맑은 산 공기를 깊이 들여 마셨다. 산 위의 길은 관광객들의 들뜸도 소음도 없이 호젓하고 조용했다. 하늘과 구름, 바위와 나무가 있는 산, 그리고 흙과 돌로 다져진 길 속에 오직 우리만 걸어가고 있었다.


문명 속에서의 조용함과 자연 속에서의 고요함은 마음이 다르게 움직인다. 신이 만들어 놓은 몬세라트의 풍광에 마음은 저절로 낮아지고 광활해지고 숙연해졌다. 머리는 비워져 지극히 평화롭고 잔잔하게 고요하고 부드럽게 편안해지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동생들과 자연스럽게 속세의 욕망을 조금씩 덜어 내고 비워내면, 덜어내고 비워낸 만큼 마음이 충만해지는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선한 신을 발견하고 찾으면서 사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산길을 걷다 보니 소박하고 작은 예배당이 있다. 하늘과 가까운 곳, 높이1,000미터가 넘는 산꼭대기에 예배당을 짓고 사람들은 기도하고 염원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신에게 다다르고 싶어서 세속의 삶을 버리고 고독한 은둔자의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문이 닫힌 오래되어 낡고 빛바랜 예배당을 보며 지상에서 하늘 가까운 이곳까지 올라올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굴곡진 삶과 상처, 기원과 소망을 생각해 보았다.


오후 1시에 소년 합창단의 성가를 듣기 위해 우리는 산을 내려왔다. 하지만 소년 합창단의 성가는 들을 수 없었다.


대신 예배를 집전하는 신부님의 성가를 들었다. 신부님의 목소리는 오랜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평화로운 안정감이 있었고 성가는 은혜로웠다.

코로나 시대에 혈액암 진단을 받고 8개월 만에 하늘로 떠난 여동생... 혈육을 잃고 상심이 컸던 우리 4남매에게 하늘과 가까운 몬세라트는 슬픔을 나누고 마음을 나눴던 여행지였다.


몬세라트에 다녀온 지 두 달이 지났는데 지금도 가끔씩 그때가 떠오른다. 상실의 슬픔을 나누었고 마음을 열고 진실한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몬세라트는 언젠가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때는 못 가 본 길 산타 코바행 쪽으로 트레킹을 하고 에스콜라니아 소년 합창단의 성가도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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