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빅토르 위고는 전지적 시점에서 인물을 창조하고 상황을 만들어내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역사가 있다. 역사라는 이름의 숲에서 위고는 많은 실존 인물을 불러내고 또 숲 속에 존재하는 나무로써 허구적인 인물을 창조한다.
역사의 숲에서 위고는 워털루 전쟁을 불러온다. 이 전쟁은 재집권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영국, 프로이센 연합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다. 위고는 <레 미제라블> 2부에서 워털루 전쟁에 대해 86페이지에 걸쳐 묘사하고 분석하고 평가한다. 전투가 치러졌던 워털루 평원에 답사를 가서 1861년의 시점에서 46년 전의 전쟁터 모습을 묘사한다.
성채였으나 농원이 되어 있는 우고몽, 백병전이 치러져 무너져 내린 성당, 총탄 자국이 남아있는 벽, 산탄 맞은 나무들의 모습을 보며 300여 명의 시체가 던져진 우물이 더 이상 우물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우고몽의 쓰러져 가는 집에서 3천 명의 병사가 베이고 학살되고 총살되었던 역사를 되짚어준다.
워털루 전쟁에 관한 전황보고서와 전쟁회상록을 살펴본 위고는 워털루 전쟁에 대해 하나의 수수께끼라고 말한다. 또는 신성한 우연과 싸우는 천재적인 인간의 파멸이라고 본다.
그 우연 중 하나는 1815년 6월 17일과 18일 사이 밤에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는 사실이다. 밤새 내린 비로 땅은 진흙구렁이 되고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겼다. 나폴레옹은 포병대 장교 출신으로 대포를 이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곤 했는데 땅이 젖어 대포와 포병대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땅이 좀 더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전쟁은 늦춰져 오전 11시 35분이 되어서야 포격이 시작되었다.
늦게 시작된 싸움에서 처음엔 나폴레옹이 이기고 있었지만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이 참전하면서 전세는 역전되어 영국의 웰링턴이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되었다. 만약 그 밤에 비가 오지 않았다면 그래서 일찍 전쟁을 시작했더라면 그래서 나폴레옹이 승리했더라면 유럽의 미래는 달라졌을 거라고 위고는 서술한다.
또 다른 눈에 띄지 않은 우연은 나폴레옹의 용감무쌍한 흉갑 기병대 3,500명이 몽 생 장 고원 탈취 명령을 받고 말을 달리던 그 길에 4m 깊이의 눈에 띄지 않은 구렁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 뜻하지 않은 골짜기 길의 출현으로 2,000마리의 말과 1,500여 명의 기병이 싸워 보지도 못하고 발버둥 치며 굴러 떨어져 죽어갔다.
그래서일까, 위고는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배한 것은 신의 뜻이라고 해석한다. 골짜기를 적실만큼 피가 넘쳐흐르고 워털루 평원이 시체로 가득한 무덤이 된 것, 그로 인해 수많은 어머니와 가족들이 슬픔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신의 뜻을 거스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고가 보는 워털루 전쟁은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다. 각각 7만 2천 명의 군사가 나폴레옹 군은 3km, 웰링턴 군은 2km의 협소한 전선에서 밀집 대형으로 몰려 있어 대살육이 벌어졌고 참극이 일어났다. 이 전투로 말미암아 프랑스군은 56%, 연합군은 31%의 사상자를 냈는데 양 군 전투원 14만 4천 명 중에 6만 명이 죽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패배로 프랑스는 루이 18세의 왕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대혁명을 거쳐 자유와 평등, 공화정을 경험하고 나폴레옹의 제정 시대를 살다가 또다시 왕정으로 돌아간 프랑스는 온갖 주의자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전쟁과 함께 그가 전 유럽에 퍼뜨렸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숨죽이게 되었고 불안과 불면의 밤을 보냈던 유럽의 왕들은 워털루 이후 구체제로 복귀했다. 그것이 워털루 전쟁이 일어났던 1815년 전후의 풍경이다.
위고는 워털루 전쟁의 역사적 사실들을 서술하면서 전쟁의 피비린내가 휩쓸고 지나간 6월 18일, 보름달이 환하게 뜬 밤의 워털루 평원을 보여준다. 그리고 처참한 역사의 한 장면에서 두 명의 인물을 창조한다.
그중에 한 명, 전쟁의 도가니 속에서조차 천한 짓을 하는 도둑 떼나르디에를 만들어낸다. 그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냇물을 이루는 워털루 밤의 평원에서 시체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기어 다닌다. 종군 상인으로 왔지만 도둑질이 주업인 이 인물은 시체를 뒤져 가져갈 만한 물건을 훔치는 중이다.
그런데 방금 금반지를 빼낸 손 하나가 그의 옷자락을 움켜 잡는다. 떼나르디에는 그를 시체더미 속에서 꺼낸다. 얼굴은 칼로 베어졌고 온몸이 피투성이인 그에게서 도둑은 훈장을 떼내고 시계와 지갑을 훔친다. 그러는 동안 정신이 든 나폴레옹의 흉갑기병 장교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이의 이름을 묻는다. 자신의 몸을 뒤져 훈장과 물건을 훔쳐간 건 모르고 자신을 구해준 은인으로만 안 그는 떼나르디에에게 자신의 이름이 뽕메르씨임을 알려준다.
프랑스군 56%가 전사한 그 전쟁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뽕메르씨는 남작 칭호를 하사 받는다. 그러나 황제는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되고 루이 18세 왕정은 그의 공로와 남작 칭호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마리우스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지만 그는 죽은 아내의 아버지인 질노르망 씨에게 아들을 보내고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질노르망 씨는 왕당파로 보나파르트파인 사위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마리우스를 만나지도 못하게 한다. 왕당파인 외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보수 왕당파로 자라던 마리우스는 보나파르트파인 아버지 뽕메르씨의 죽음을 통해 사상의 전환을 겪게 된다. 아버지를 통해 프랑스가 겪은 대혁명과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를 배우고 받아들이게 된다. 아버지의 유서 속에 나오는 이름, 떼나르디에는 마리우스에게 언제나 갈등과 숙제로 존재해 흥미를 가지고 책을 읽게 만든다.
역사 속에서 1815년은 워털루 전쟁이 일어난 해이고 소설 속에서 1815년은 장 발장이 감옥에서 출소해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해이다. 역사는 허구 속에서, 허구는 역사 속에서 부딪히고 만나고 헤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밀도 있게 혹은 긴장감 넘치게 혹은 장엄하게 혹은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그것이 소설 <레 미제라블>을 읽게 만드는 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