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다시 읽고 있다. 동서문화사에서 발행된 <레 미제라블>은 총 6권으로 구성된 완역판이다. 1802년에 태어나 83년을 살면서 빅토르 위고는 시, 소설, 희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한 양의 문학 작품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정치 활동과 사회 활동을 하면서 명망가가 되었고 민중에 대한 애정과 반정부인사로서 19년 간 망명객으로서의 삶은 그를 위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위고의 독자로서 그가 쓴 소설 <웃는 남자>와 <93년>과 <레 미제라블>을 책으로 읽었다. 그의 소설들은 역사적 배경과 극적인 인물들을 내세워 흥미와 감동을 주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레 미제라블>이다.
많은 자료를 토대로 방대한 분량의 <레 미제라블>은 19세기 프랑스의 역사가 담겨 있는 역사소설이고 사회의 빈곤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비참하게 무너뜨리는지에 대한 사회소설이며 워털루 전쟁에 관한 고찰로 이루어진 전쟁소설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낭만적인 문장들이 넘쳐나는 서사시적 특징까지 아우른다. 그중에서도 <레 미제라블>의 가장 뛰어난 점은 장 발장이라는 인물에서 나온다.
가지치기 인부였던 장 발장은 1796년 굶주리는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치다가 주택침입절도죄로 5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하지만 네 차례의 탈옥 시도로 형이 추가돼 총 19년을 감옥에서 보낸다. 발에는 족쇄를 차고 새벽부터 밤중까지 고된 노역에 시달리며 욕을 먹고 매를 맞고 널빤지를 침대 삼아 잠을 자고 추위에 노출된 죄수의 삶을 산다.
빵 하나를 훔친 죄로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 장 발장은 자신이 왜 이렇게 됐는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는 자신에게 가해진 형벌이 너무나 가혹하며 불공평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사회에 대한 분노, 천지만물에 대한 증오심이 들끓게 된다.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위험인물로 분류된 그는 가는 곳마다 관공서에 들러 통행증을 제시해야 했고 사람들은 그를 회피하거나 내쫓았다.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인 먹을 것도 잠자리도 얻기 힘들었다.
그때 장 발장에게 문을 열어 주고 식탁에 앉아 함께 저녁을 먹고 따뜻한 잠자리를 주었던 인물이 미리엘 주교이다. 그러나 장 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집에서 은그릇 6개를 훔쳐 달아난다. 얼마 후 헌병에게 붙잡힌 그는 주교님이 준 거라고 거짓말을 한다. 끌려온 장 발장을 보고 미리엘 주교는 도둑질을 꾸짖는 대신 은촛대 2개를 더 건네준다. 그리고 이 은으로 해서 들어오는 돈은 정직한 인간이 되기 위한 일에 쓰도록 하라는 말을 하며 장 발장을 보낸다.
장 발장은 여태까지 살면서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친절과 베풂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그는 도둑질을 했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길을 가는 중에 만난 소년에게서 돈을 갈취했다. 장 발장의 악행은 신중하고 계획적이며 본능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사회의 냉대를 받은 만큼의 냉혈한이고 그의 악은 본능적이다.
그러나 장 발장은 소년의 돈을 빼앗은 일을 곧 후회하며 돈을 돌려주려고 미친 듯이 소년을 찾아다닌다. 그리고는 “아, 나는 불쌍한 인간이다.”라고 탄식한다.
그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영혼의 부르짖음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발견한 순간의 자각이었다. 자신이 당했던 고초와 억울함으로 자기 영혼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모습을 똑바로 바라본 순간이고 무너져 내리는 영혼을 발견한 순간이기도 했다. 인간과 사회에 품고 있던 증오심과 분노가 사실은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고 신이 그의 영혼을 품어 준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한 깨달음과 뉘우침의 과정을 거쳐 장 발장은 마들렌느 씨가 된다. 그는 1815년 몽트레이유 쉬르 메르라는 작은 도시에 들어와 화재 속에서 두 아이를 구해 이름이 알려진다. 그 후 적은 자본과 기발한 착상을 가지고 큰 재산을 모아 공장을 세우고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 경제를 발전시킨다. 학교와 보육원을 세우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 덕분에 도시는 산업의 중심지가 되고 그는 지역 사회에 세운 공로와 지역 경제에 끼친 선한 영향력으로 시장이 된다. 검소하고 선량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그는 지역 사회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까지 알려져 존경의 대상이 된다.
어느 날 마들렌느 씨는 자신을 의심하는 형사 자베르를 통해서 장 발장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는다. 진짜 장 발장인 마들렌느 씨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자기 대신 감옥에 가게 될 가짜 장 발장을 떠올린다. 샹마띠외라는 가짜 장 발장이 자기 대신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종신형에 처해질 것이다.
마들렌느 씨는 깊은 고뇌에 휩싸인다. 샹마띠외는 얼마 살지 못할 늙은 노인이고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으니 감옥에 가는 것은 그의 일이라는 생각. 자신이 여태까지 지역사회에 기여해 온 것들 즉, 자신이 일궈 놓은 윤택한 경제가 빈곤과 도둑질과 살인을 사라지게 만들었는데 내가 없으면 지역 경제가 다시 침체될 것이고 빈곤은 악덕을 불러올 것인데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은 누가 돌볼 것인가, 하는 문제들. 버림받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팡띤느와 비참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어린 딸 코제트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들.
마들렌느 씨가 장 발장이 아닌 마들렌느 씨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았고 마들렌느 씨는 지역 사회에서 아주 필요하고 중요한 사람이었다. 자기 보호 본능과 자기 합리화가 그를 감싸고 돌았다. 그러나 마들렌느 씨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울려오는 양심의 목소리는 자기 대신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하게 될 샹마띠외에게로 향한다. 무지하고 가난하고 늙은 샹마띠외가 자기 대신 장 발장이라는 이름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
자수를 하고 자백을 하면 그는 존경하는 시장님에서 가장 위험한 죄수라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고 그가 여태 누렸던 존경은 비난으로, 자유는 속박으로, 명예는 혐오로 바뀔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생각하기도 끔찍한 공포였다. 결코 다시는 돌아가면 안 되는 지옥이었다.
하룻밤 동안 일어난 마들렌느 씨의 깊은 고뇌는 그의 내부를 흔들어 놓았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누명 쓴 한 사람을 위하여 지역 사람들을 활기차고 윤택하게 해 주었던 마들렌느의 삶을 버려야 할 것인가, 자수를 하면 가엾고 불쌍한 코제트를 구할 수 없게 될 터인데 그건 또 어찌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들이 밤새도록 그를 휘감았다.
위고는 장 발장의 고민을 이렇게 표현한다. ‘천국에 머물면서 악마가 될 것이냐, 지옥에 머물면서 천사가 될 것이냐.'
그는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은 채 샹마띠외의 재판정으로 향한다. 재판정에 들어가기까지 장 발장의 마음속 치열한 격전은 수많은 유혹으로 묘사된다. 신과 거인이 벌이는 치열한 격투 묘사는 이 소설을 읽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몽트레이유 쉬르 메르의 시장인 마들렌느 씨는 재판정에서 자백한다. 가난하고 볼품없는 한 노인을 구하기 위해 인품이 훌륭하며 덕망 있는 마들렌느 씨가 자신이 장 발장이라고 자백하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는 순간, 자신이 쌓아온 덕망과 명예, 재산과 자유와 이별하는 순간, 감동이 온다.
재판정에서 그의 자백을 듣는 동안 판사도 검사도 모두 넋이 나가 그가 말을 마치고 나가는 것을 그저 지켜본다. 숭고한 행위는 그런 것이다. 죄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판단과 이성의 작용을 마비시킨다. 그래서 온전히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고 신에게로 향하는 길이다. 마들렌느 씨는 영예와 덕망과 자유의 이름을 버리고 다시 그렇게 장 발장이 되었다.
장 발장이 마들렌느 씨가 되어 살아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관용과 친절을 실천했던 미리엘 주교가 있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가지고 베풀었던 마들렌느 씨가 다시 장 발장이 된 데에는 치열한 내적 갈등이 있었다.
장 발장의 훌륭한 점은 자기 합리화의 욕망을 버리고 두려움과 공포를 뚫고 나가 자신의 내면 깊은 곳까지 들어가 거기 존재하는 자기 양심과 똑바로 마주했다는 점이다. 진실을 마주하고 양심을 만나 그것을 선택한 이후의 삶이 지옥이거나 전쟁터일지라도 피하지 않고 끌어안았다는 점이다.
위고는 장 발장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사회적 빈곤과 편견, 감옥이 어떻게 악인을 만들어가는 지를 보여준다. 악인이 관용과 친절을 만나 어떻게 선인이 되어가는 지도 보여준다. 또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 그 치열한 다툼 속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길인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