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생각 없이 몽테뉴의 <에세>를 도서관에 신청해 받고 보니 두꺼운 양장본 책 세 권이었다. 한 권일 줄 알았는데 세 권이라 놀랐고 세 권 모두 두툼해서 또 한 번 놀랐다.
9월의 태풍을 겪고 추석 명절을 보내며 후덥지근한 가을과 시원한 가을바람 사이에서 나는 <에세>를 읽고 또 읽었다. 이천 여 페이지의 분량을 다 읽으니 9월이 막바지에 와 있다. 읽기에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아니 오히려 흥미롭게 읽었는데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옆에 두고 살아선 지 다 읽은 <에세>를 보내는 마음은 후련하면서도 아쉽다.
16세기 프랑스에서 살았던 몽테뉴는 죽기 전까지 20년을 이 책에 즉, 자신을 탐구하는 일에 매달려 있으면서 하나의 주제에 대해 생각날 때마다 덧붙이고 또 덧대는 방식으로 책을 발행했다. 1,2권과 마찬가지로 <에세> 3권에도 자신을 탐구하는 일을 직업이라 여기며 13가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썼다.
5장의 베르길리우스의 시 몇 구절에 관하여, 라는 제목에는 몽테뉴의 결혼관이 나타난다. 그에게 결혼이란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후대를 위해서 그리고 집 안을 위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에는 혼맥과 재산이 고려된다. 그는 결혼에 사랑은 관계없다고 본다. 그에게 좋은 결혼이란 아늑한 삶의 공동체로서 한결같음과 신뢰와 봉사와 보살핌이다.
사랑을 집 밖에서 찾은 몽테뉴는 지혜롭게 자유를 관리했다고 표현한다. 결혼은 풍속에 따라 한 것이므로 결혼의 법칙은 준수하면서 살았으되 젊은 시절 자신이 방탕과 난봉에 이르렀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사랑 없는 결혼은 그 시대에 지켜야 할 것과 가진 것이 많은 왕족과 귀족들의 태도이니 몽테뉴도 이 부분에서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결혼이 당사자보다 가문과 가문 사이의 일로 간주된 것은 역사 속 우리나라의 왕족이나 양반들도 마찬가지였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젊은 시절의 나라면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이 당연하다고 말했겠지만 결혼해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그리고 주변 지인들의 결혼생활도 지켜보면서 어떤 결혼이 좋다,라고 한 마디로 단정 짓기가 어려워졌다. 사랑이든 학벌이든 재산이든 집안이든 무엇을 보고 결혼을 했든지 부부가 잘 지내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하고 인정해주고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야 안온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588년판 보르도본 몽테뉴의 <에세>
자식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아버지 덕분에 몽테뉴는 모국어보다 라틴어를 먼저 익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책을 통해 옛 로마인들을 자연스럽게 만났고 그래서 집안 일보다 로마의 일을 먼저 알았다고 쓰고 있다. 그만큼 로마는 그에게 특별한 곳이어서 로마로부터 로마 시민증이 수여된 것에 대해 그는 자랑스러워한다.
종교개혁이 일어나 구교와 신교가 분리되고 왕권과 교황권의 갈등으로 교황의 권위가 이전보다 많이 추락한 시대였지만 그래도 교황의 권위는 강고했고 구교도인 몽테뉴에게 로마는 여전히 기독교 국가의 수도로 여겨진다. 로마의 폐허조차 영광스럽고 당당하다고 표현한 것은 고대 로마의 지적 문화적 산물들이 그의 정신과 사상에 체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폐허로 남은 로마의 포로 로마노
로마의 명망과 매력은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해서 나 역시 로마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나에게 로마의 폐허는 장엄함이었다.
고대 로마 시민들의 생활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는 부서지고 해체된 돌무더기들로 가득했다. 찬란하게 빛났던 고대 로마의 흔적은 세월의 더깨가 묻은 개선문의 부조들과 신전의 기둥과 돌무더기로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도시와 인간 역사의 흥망성쇠를 보았는데 봄볕이 내리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무너지고 쇠한 유적들은 인간사의 덧없음도 일깨워주고 있었다.
역사 속에 사물은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느껴지는 것일 텐데 고대 로마 시대의 폐허를 16세기에 살았던 몽테뉴가 걸었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내가 걸었다는 게 묘한 느낌이 든다.
보르도의 몽테뉴 성 탑 부분
3권 본문이 끝나고 부록 편에는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보르도의 몽테뉴 성 사진이 실려있다. 몽테뉴가 1571년 법관직을 사직하고 몽테뉴 성의 주인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그 시대 모습 그대로 탑이 남아있다. 탑에는 예배실과 침실, 옷방, 그리고 4층에는 서재가 있는데 온전히 자신만의 공간인 이 서재에서 몽테뉴는 자신의 시간 속에 들어앉아 자신을 들여다보며 에세를 썼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대머리에 회색빛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의 몽테뉴가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모습이 보인다. 키는 작지만 몸매는 다부지고 발걸음이 빠르고 단호한 그의 걸음걸이도 상상이 된다.
내전이 진행되던 시기에 말을 타고 여행하다가 적들을 만난 상황에서 두려움 없이 당당하면서도 침착한 모습을 보여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가 그려진다. 앙리 3세의 지시로 보르도 시 시장으로 취임하면서 자신은 기억력도 없고 집중력도 경험도 추진력도 없다고, 또한 증오심도 없고 야심도 탐욕도 난폭함도 없다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향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말한 그도 그려진다.
신교도와 구교도 간 내전 상황에서 몽테뉴는 양쪽을 오가면서 협상을 진행했다. 양쪽을 오간다는 것은 오랜 내전으로 골이 깊어진 이쪽과 저쪽에서 첩자로 의심받을 수 있고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아슬아슬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양쪽을 속이지 않고 터놓고 대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했다. 양쪽 모두에게 솔직하고 진실하게 다가갔으며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는 의심이 아니라 양쪽의 호의를 받으며 협상을 이끌 수 있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고 속이지도 않고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권력욕이나 명예욕이나 탐욕에 빠지면 이를 저버리게 된다. 하지만 마음을 연 솔직하고 진실한 태도는 위험한 상황이 명예롭게 그리고 평화롭게 바뀔 수 있음을 몽테뉴는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자신을 조절하면서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발휘했다. 진정한 자유란 자기를 향한 완벽한 통제력이라고 말한 몽테뉴가 스스로를 조절한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탐구하게 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에 대해 알게 되는 것 같다. 마음을 연 솔직하고 진실한 태도는 속임수와 변명과 핑계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를 가져올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몽테뉴의 <에세>를 떠나보내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고 그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글을 쓸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몽테뉴가 자신의 방식대로 글을 썼듯이, 나는 또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의 방식대로 삶을 담아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