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에세이 형식의 글을 발행한 지도 아홉 달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나는 여행 다녀온 이야기, 가족들과 이별한 일, 그리고 이즈음의 일상을 써 왔다. 34편의 글을 쓰다 보니 요즈음에는 무엇을 쓰면 좋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에세이란 자신을 내보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글인데 '나'라는 인물은 내가 존재하는 모든 시간 모든 공간 모든 사건 속에 '나'이므로 그 취사선택의 범위가 우주만큼 넓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너무 많은 내가 있어서 오히려 어떤 나를 써야 할지 모르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자아라는 드넓은 벌판에서 어느 한 지점을 골라 곡괭이로 땅을 파듯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 지점을 고르고 선택하는 것이 항상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처음 에세이를 쓴 몽테뉴는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썼을까 궁금해졌다. 몽테뉴의 <에세>는 양장본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책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옮긴이의 말(심민화, 최권행 옮김)에 따르면 몽테뉴가 살아생전 1580년에 첫 출판된 <에세>는 그 후 20여 년에 걸쳐 새로운 생각들이 첨가되고 인용 자료들이 추가되면서 방대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민음사 판 <에세>는 총 세 권에 1988쪽에 달한다. 1권만 읽은 현재, 내 에세이는 <에세> 1권에 대한 소감이 될 것이다.
책 서문에서 몽테뉴는 이 책에 무엇이 쓰였는가,를 밝힌다. 그는 "나 자신이 내 책의 재료"라고 말한다. "세상의 호의를 얻기 위한 것"이거나 "나를 더 잘 장식하고 공들여"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꾸밈없이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보통 때의 모습"을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그의 표현대로 <에세>를 읽다 보면 몽테뉴는 자신의 약점이나 결점도 스스럼없이 내보인다. 그렇게 친근하고 인간적인 모습이라 글이 더 잘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1571년 38세의 몽테뉴는 법관 생활에서 은퇴하고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몽테뉴 성에 들어가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바라보았다. 자신이 사는 세상에 대해, 자신이 교육받고 읽고 경험해 온 모든 것을 주제로 삼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험하고 시도한 결과물 <에세>가 되었다.
몽테뉴의 <에세> 1권은 내용이 흥미로워서 573페이지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릴 때 읽었던 우리의 전래 동화처럼 <에세>는 서양에서 전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 같다. 몽테뉴가 살았던 16세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풍습과 역사와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 있고 그가 읽은 고대 로마 시대의 세네카와 키케로, 루크레티우스와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인물들의 말이 수시로 인용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1권에서 몽테뉴는 57개의 주제를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서술한다. 예를 들어 슬픔이나 의연함, 공포와 같은 감정적인 것들과 잠이나 이름, 냄새나 옷, 나이와 같은 일상적인 것들, 그리고 협상이나 왕과 대신들에 대한 정치적인 것과 죽음이나 행복과 같은 철학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그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넓고 다양하다.
'식인종에 관하여'라는 주제의 글은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흥미롭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대항해 시대를 산 몽테뉴는 신대륙을 다녀온 선원이나 상인 심지어 신대륙에서 건너온 원주민을 직접 만난 경험과 생각을 글에 담았다.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으로 모든 것을 나누고 따라서 부의 독점이 없고 원초적인 천진성을 가지고 사는 신대륙인들의 일상을 몽테뉴는 흥미롭게 서술한다. 신대륙인들의 식인 풍습에 대해서도 어떤 목적이나 굶주림으로 인해 유럽인들에게도 식인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옛 글을 인용해 그들의 야만성이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몽테뉴는 "자기 관심이 아닌 것을 야만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면 이 신세계에는 아무것도 야만적이거나 원시적인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몽테뉴는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의 관점에서 다른 세계의 문화를 바라보는 균형적인 시각을 지닌 지성인이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희망 그리고 욕망으로 인해 오늘을 걱정과 근심, 불안함으로 사는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우리 인간의 일인가 보다. 500여 년 전 몽테뉴의 시대에도 그랬는지 그는 '우리 마음은 늘 우리 저 너머로 쓸려간다'라는 주제로 내일을 걱정하는 영혼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 걱정과 근심이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게 만들며 심지어 불행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몽테뉴는 이 부분에서 플라톤의 위대한 가르침이라며 네 일을 하고 너를 알라, 고 말한다.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살라는 말로 해석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아는 것. 그래서 몽테뉴는 좀 더 자세히 덧붙인다.
"자기 일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이 자기가 누구이고, 자기에게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
어쩌면 우리 인생의 불행은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오는 게 아닌가 싶다. 대부분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삶,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산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 정해 놓은 길을 따라가는 삶을 산다. 그런 삶이 익숙해서 편안하긴 하지만 내 몸과 영혼에 맞지 않으면 피곤하고 힘들고 나도 모르는 새 피폐해진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불행하다 생각되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시간이 흘러 어느덧 죽음에 이르게 된다.
남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를 탐구하고 성찰하며 살아가는 길은 어쩌면 용기가 필요하고 외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자발적인 외로움은 의도하지 않은 외로움보다는 견디기 쉬운 일일 것이다.
몽테뉴는 공적인 일을 하면서 자신의 손과 어깨는 빌려줄 수 있어도 그 일을 자신의 간과 폐에 담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사회적인 삶을 간과하지 않되 자기 정신과 영혼의 강건함을 지키겠다는 소신으로 들린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사는 길로 끊임없이 자아를 성찰하고 탐구하는 방법을 선택한 몽테뉴는 그래서 <에세>라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자기를 성찰하고 자아를 탐구하며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삶,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는 이 길에 몽테뉴의 <에세>는 좋은 벗이 되어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