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사건, 파리의 바리케이드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동서문화사)

by 밝은 숲

1815년의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패배한 후 프랑스는 루이 18세가 다스리는 왕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대혁명으로 자신들의 왕이었던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세우고 공화정을 수립했던 프랑스가 다시 루이 16세의 동생을 왕으로 올렸으니 구체제로의 복귀라 할 수 있다. 1824년 루이 18세가 죽고 그의 동생 샤를 10세 통치 기간인 1830년에 7월 혁명이 일어났다.


사흘 동안 바리케이드를 구축하고 왕정 반대를 외치며 들고 일어난 프랑스는 부르봉 가의 샤를 10세를 내쫓고 루이 필립을 왕으로 앉힌다. 혁명과 안정이라는 상반된 두 이미지를 갖고 있는 타협적인 인물 루이 필립이 부르주아들에게는 대안이었다. 오를레앙 가 출신인 루이 필립은 대혁명 때 루이 16세 재판에 출석해 민중의 심판에 대한 공포와 경의를 경험했다. 그리고 혁명이 낳은 반전으로 왕권을 거머쥐었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루이 필립 시대인 1832년 6월에 일어났던 사건 하나를 다룬다. 작가 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실이고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지만 거기에는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이 있음을 언급한다.


역사 속에서 인류는 지배자에 의해 권리를 침해당하거나 민중의 고통이 배가되면 폭동 혹은 반란으로 항거했다. 그러면 무엇이 폭동이고 무엇이 반란인가, 위고는 책 속에서 폭동과 반란을 고찰하고 구분한다.


폭동은 전체에 대한 한 당파의 공격이고 대개의 경우 물질적인 문제에서 일어나는데 더없이 잔인한 폭력행위가 될 수 있다. 반란은 집단의 주권과 관계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 한 당파에 대한 전체의 투쟁으로 언제나 정신적인 현상이다. 파리가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한 것, 그것을 위고는 반란으로 본다. 반란이 성공하면 혁명이 되는데 1789년 대혁명과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이 그 예이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맛본 프랑스 민중에게 1830년의 7월 혁명은 미완의 혁명이었다. 민중들에게는 왕정이 아니라 공화정에 대한 신념과 대혁명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1831년과 32년의 프랑스는 반쪽의 성공이었던 7월 혁명의 여파로 반란이 자주 일어났다.


그중에서 위고는 1832년 6월 5일과 6일 사이에 있었던 반란을 살펴본다. 알아야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묻히고 사라진 사건들을 촘촘히 묘사하고 꼼꼼히 불러온다. 그래서 <레 미제라블> 4권의 끝부분과 5권은 파리의 바리케이드에 관한 이야기다.


프랑스인들이 애통해한 장군 라마르크의 장례식날인 1832년 6월 5일, 파리의 공기는 불안했고 거리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라마르크의 장례 행렬은 군대에 둘러 싸여 파리 시내를 통과했다. 장례 행렬 뒤에는 라마르크의 죽음을 애도하는 수많은 군중이 뒤따르고 그들의 손에는 '공화제냐, 죽음이냐’라고 쓴 깃발이 들려있었다. 총으로 무장한 군중도 있었고 완전 무장한 군인들도 거리 곳곳에 배치되었다.


어느 사이엔가 누군가의 돌팔매로 시작된 싸움은 총격전으로 이어져 저녁 6시쯤 거리 곳곳은 전쟁터가 되었다. 성난 군중들은 도로와 관청, 광장과 성문을 점령하고 무수한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졌다. 길에 깔린 돌을 깨서 쌓아 올리고 술통과 벽돌과 주변에 있는 모든 물건을 쌓아 올려 3m, 혹은 4m 높이의 바리케이드가 즉흥적으로 건설되었다.


소설 속에서 꼬랭뜨 술집을 기점으로 샹 브르리 거리의 바리케이드를 주도적으로 세운 이들은 파리의 비밀 결사 단체를 만든 앙졸라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대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주의를 목표로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2년 전에 있었던 7월 혁명처럼 파리 시민들이 문을 열고 도와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7월 혁명 이후 여러 번의 반란을 경험한 루이 필립 왕은 태연했고 파리 시민들은 당구를 치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바리케이드가 쳐진 지역의 사람들은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불을 끄고 숨을 죽였다. 한쪽에서는 목숨을 건 전투를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일상생활을 하는 기묘한 날이었다.


바리케이드 안에서 여든 살 노인 마뵈프는 쓰러진 혁명의 깃발을 꽂다가 총에 맞아 숨졌고 불행하지만 쾌활한 파리의 부랑아 소년 가브로슈 역시 총에 맞아 숨졌다. 마리우스를 사랑한 에포닌은 마리우스 대신 총을 맞고 숨을 거뒀다.


6월 6일 새벽, 공화제와 혁명을 꿈꾸는 이들은 바리케이드 안에서 고립되었다. 원군은 오지 않았고 무기는 다 써 버렸다. 루이 필립 정부는 바리케이드를 향해 대포를 쏘았다. 어머니와 형제를, 아내와 자식을 남겨둔 수십 명의 노동자와 학생들이 바리케이드 안에서 싸우다 죽었다. 사상을 탐구하고 인간의 권리를 확장시키려던 앙졸라와 그의 친구들도 죽었다. 바리케이드는 무너지고 6월 6일 낮에 바리케이드는 점령되어 그 안에서 싸우던 모두가 죽었다.


단, 총에 맞은 마리우스를 등에 업고 지하 수도로로 도피한 장 발장을 제외하고 말이다.


1832년 6월의 반란은 비극적으로 끝났다. 그들의 반란이 성공했으면 스러져간 이들은 혁명의 영웅으로 대접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반란은 혁명도 무엇도 아니어서 죽은 이들과 사건은 쉽게 잊힌다. 그런 사건을 위고는 기억하고 스러져간 이들을 불러와 실패한 사건의 위대한 점을 서술한다.


바리케이드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싸우다 생을 마감했는지, 그들이 죽음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영혼의 눈으로 묘사한다. 춥고 배고프고 어두운 시대에 모두를 위한 진보와 모두를 위한 빛을 꿈꾸었던 정의로운 영혼들을 기린다. 비극적인 죽음이어서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래서 그들을 상기시킨다.


이 주제를 다루면서 위고가 책 속에 적은 하나의 문장이 내게는 아주 인상적이다.


“오늘날의 유토피아는 내일이면 살과 뼈를 가진 현실이 될 것이다.”


위고의 이 문장이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길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