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랑베르, 발자크 지성이 만든 인물

오노레 드 발자크 <루이 랑베르> (문학동네)

by 밝은 숲

내가 프랑스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를 제대로 접한 건 예전에 읽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에서였다. 그가 쓴 평전에서 발자크는 글 쓰는 노동자였다. 발자크는 돈과 명예, 성공에 대한 야망이 큰 사람이었다. 그러나 벌이는 사업마다 실패했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고 그로 인해 많은 빚을 지고 살아야 했다.


빚을 갚기 위해 발자크는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글을 썼다고 한다. 펜과 종이, 커피와 함께 밤 12시부터 시작된 그의 글쓰기 노동이 이룬 성과는 어마어마해서 발자크는 방대하고도 의미 있는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읽고 나서 발자크가 쓴 글이 궁금해 <고리오 영감>을 읽은 적이 있다. <고리오 영감>은 발자크가 만든 소설 체계 《인간극》의 풍속 연구, 철학 연구, 분석 연구 중 풍속 연구에 속하는 소설이다. 19세기 파리의 풍경을 고리오 영감과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오노레 드 발자크 <루이 랑베르> (문학동네)


이번에는 발자크의 철학이 궁금해 철학 연구로 분류된 소설 <루이 랑베르>를 읽었다. 이 소설은 1830~1835년 사이에 쓰였으니 30대의 발자크가 그때까지 자신이 읽고 소화시키고 체계를 잡은 철학적 지성을 총 갈무리해 썼을 것이다. 루이 랑베르를 통해 말해지는 철학을 비롯한 역사, 과학, 신화 등 학문의 서술을 통해 발자크가 얼마나 깊이 있고 넓은 독서를 했는지 알 수 있다.


발자크는 이 소설을 방돔 기숙학교에서 루이 랑베르를 만난 나의 시점으로 서술한다.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루이 랑베르를 살펴보는 한편 기숙학교에서 이미 완성된 랑베르의 철학을 설명하고 랑베르의 삶과 죽음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시점일 것이다.


화자는 방돔 기숙학교 단짝 친구로 랑베르의 지성사를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화자가 나누는 랑베르의 지적인 삶은 세 단계이다.


첫 번째 단계는 어린 시절이다. 1797년에 태어난 랑베르의 어린 몸은 병약했지만 뇌 기관은 완숙하고 신경 조직의 생성도 왕성했다. 그래서 다섯 살에 성경의 심오함을 이해할 정도로 지적 능력이 조숙했고 신성한 정신에 관심이 많아 신비주의에 매료된다. 아이들과 놀기보다는 다독을 하고 관념을 추구해 랑베르는 유년기에 지적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방돔 기숙학교 시절이다. 실제로 발자크는 어린 시절 방돔 기숙학교를 다녔는데 자전적인 경험을 루이 랑베르의 학창 시절로 불러들인다. 방돔 기숙학교는 반은 군사적이고 반은 종교적이어서 제복을 입고 복장과 위생과 정신 상태에 대한 검열로 아이들을 통제한다.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해야 부모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폐쇄된 공간에서 바깥세상과 분리된 생활을 한다.


자연 속에서 자유로운 사색과 명상과 독서로 지성의 완성 단계에 이른 랑베르에게 기숙학교의 엄격함과 단체성은 고통이었고 수업 시간에는 하늘을 보며 사색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런 랑베르의 태도는 선생님이 보기에 좋지 않은 수업 태도를 가진 것이어서 랑베르의 학교 생활은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육체적으로는 체벌을 당하고 벌을 받는 게 일상이었다.


랑베르는 향수병과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갈수록 사유의 본질 탐구에 몰두한다. 마음과 머리로 존재하는 랑베르에게 사유와 명상은 삶의 이유이고 즐거움이었다. 자신의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로 랑베르는 <의지론>이라는 제목으로 원고를 쓴다. 하지만 아이들의 따돌림과 선생님의 몰이해로 원고는 압수당해 사라져 버린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계는 랑베르가 열여덟 살에 기숙학교를 나와서부터이다. 랑베르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파리로 간다. 호기롭게 파리에 발을 디뎠지만 파리의 사교계에서 모든 것의 출발점은 돈이었다. 더구나 그곳은 속임수와 파렴치함으로 살아가는 곳이었다. 모든 학문에 통달했지만 가난하고 속임수도 없고 파렴치함도 없는 랑베르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정신과 마음이 얼굴을 내밀 수 없을 정도로 푸대접을 받았다. 물욕과 이기심과 탐욕이 우글거리는 파리에서 버티지 못한 랑베르는 3년 간의 파리 생활을 접고 외삼촌이 있는 블루아로 간다.


그곳에서 랑베르는 부유한 유대인 상속녀 빌누아 양을 만난다. 그녀의 내면에서 천사를 발견한 랑베르는 그녀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파리에서 느꼈던 세상의 편견을 그녀와의 사랑으로 극복하고 승리와 성공을 사랑 안에 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결혼식 전날 랑베르는 광기에 사로잡힌다. 59시간 동안 시선을 한 곳에 붙박은 채 먹지도 자지도 않는 강경증 발작을 일으킨다. 발작이 멈추었을 때 랑베르는 깊은 공포와 우울증과 무능력감에 빠져들고 거세를 시도하려는 순간, 외삼촌이 그를 막는다. 파리의 정신의학자는 랑베르의 치유 가능성은 없고 다만 그에게 햇빛이 차단된 어둡고 고요하고 시원한 방을 주라고 진단한다.


빌누아 양은 결혼식 전날 미쳐 버린 랑베르를 자신의 성으로 데리고 와 돌본다.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도 랑베르를 만나지 못했던 화자는 빌누아 성에 가 랑베르를 만나는데, 랑베르의 머리는 하얗게 세었고 얼굴엔 주름이 가득하고 눈은 장님처럼 흐릿해져 있어 마치 무덤에서 파내 온 시체 같다. 누가 곁에 있어도 알지 못하고 말을 해도 듣지 못한다.


그러나 랑베르의 사유 속에서 살고 있는 빌누아 양은 그의 모든 생각을 이해한다. 자신의 육체에서 벗어나 자신 만의 정신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랑베르를 서글픔 속에서 이해하고 그를 돌본다. 랑베르는 빌누아 양의 애정어린 보호 아래 머물다가 스물여덟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발자크는 이 책을 통해 천재를 넘어서 신에게 더 가까운 루이 랑베르라는 인물을 창조해 자신의 철학적 견해와 사유의 결과물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랑베르가 성인이 되어 사랑에 빠지고 누구보다 행복하고 부유한 생활을 하게 될 거라고 예상했을 때 랑베르가 광기를 일으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


발자크가 만들어낸 소설의 플롯은 이처럼 비극적이다. 비극은 독자에게 슬픈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더 오랜 여운과 안타까움을 가져온다. 그런 의미에서 발자크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루이 랑베르가 탁월한 지적 능력을 꽃피우지 못한 것은 제도교육이 가진 헛점이 아닐까라는 생각, 사회가 능력있는 사람들을 키워주는 열린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다양한 능력의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다양하게 펼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일어났다. 이 책이 쓰여진 지 이백 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인류는 얼마나 나아졌는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발자크는 루이 랑베르의 입을 통해 인간은 너무 위대하면서도 너무 하찮은 존재라고 말한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루이 랑베르가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지 못하고 일찍 죽음에 이른 면에서 나는 이 문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반 백년이 넘은 나는 이 문장을 다른 관점에서도 바라본다. 인간은 하찮은 존재이지만 위대한 존재이기도 하다고, 그 위대함은 하찮다고 생각되는 일상을 성심껏 사는 데서 나온다고, 남들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좁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보인다고, 한 발 한 발씩 걸어가면서 보이지 않는 길을 찾고 길을 만들어가는 데서 나온다고, 그래서 지금 여기에 하찮은 존재의 위대함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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