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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Aug 17. 2023

프로방스에서 온 편지

알퐁스 도데 <별> 혹은 <별들>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1840~1897)소설을 읽었습니다. 이 책이 편지글로 이야기를 하듯 쓰인 것처럼 저도 독자님들께 편지를 쓰듯  봅니다.

처음에는 책장에 꽂혀 있는 2008년 발행된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는 요즘 나온 알퐁스 도데가 궁금해져서 도서관에 가 <별들>이라는 제목을 단 연작소설집을 빌려왔습니다. 2017년 새움출판사에서 발행한  이 책은 서문을 제외하고 스물네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풍차방앗간의 매매계약서 형태로 쓰인 '서문'은  알퐁스 도데가 프랑스 남부지방인 프로방스 중심부, 론 계곡의 언덕 위에 위치한 제분용 풍차방앗간을 매매한 것으로 시작합니다. 물론 허구지요. 허구지만 이십 년 이상 방치되어 야생포도나무와 이끼, 로즈메리 등으로 뒤덮인 풍차 날개와 방앗간 모습을 묘사한 부분은 실제인 듯 생생합니다.


알퐁스 도데, 하면 떠오르는 소설 '별'이 이 책에서는 '별들'로 번역되었어요. 별이 단수든 복수든 프로방스의 풍경과 밤하늘을 상상할 수 있는 목동 이야기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다만 어릴 때 읽은 ‘별’이 그저 순수하고 낭만적으로 다가왔다면 나이 들어서 읽은 ‘별들'은 목동의 삶과 사랑에 대해 생각게 합니다.


목동이 스테파네트를 사랑하는 방식은 소유하고 욕망하는 사랑이 아니라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사랑입니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을 넘어선 그 사랑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퇴색되지 않고 목동의 가슴속에서 뿐만 아니라 독자의 마음에서도 밝게 빛날 거라 생각됩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처럼 말이지요.


첫 번째 이야기 '정착'에는 풍차방앗간에 바라본 프로방스의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평선엔 알피유산맥의 삐죽하고 선명한 봉우리들이 들어서 있고 소나무와 참나무가 숲을 이룬 언덕 위에 풍차방앗간이 서 있습니다. 라벤더 꽃 사이로 도요새가 보이고 길 가는 당나귀 방울소리도 들립니다.


프로방스에선 여름이 되면 가축들을 알프스로 보내는데 가축들과 더불어 사람들은 대여섯 달을 산속에서 보내고 가을의 첫 오한이 찾아들면 농가로 내려온답니다. 숫양이 앞서고 그 뒤로 어미 양들이 따르고 새끼 양은 바구니에 담겨 노새를 타고 내려옵니다. 그리고 양치기들과 개들이  뒤를 따르겠지요.


알퐁스 도데가 묘사하는 프로방스 자연은 아름답고도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는 여러 가지 빛깔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에게 긴 여운을 남긴 이야기는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입니다.


프로방스 지방에는 미스트랄이라 부르는 강하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데 이를 이용해 언덕 위에는 풍차방앗간이 성행했답니다. 미스트랄 바람에 돌아가는 풍차 날개, 밀 포대를 실은 당나귀들이 줄을 서 풍차방앗간으로 가곤 했다지요. 풍차방앗간 덕분에 동네는 풍요로웠고요. 


코르니유 영감은 육십여 년 동안 풍차방앗간을 운영하며 밀가루 속에서 산 늙은 방앗간 주인입니다. 그런데 파리에서 온 사람들이 증기 기관으로 돌리는 제분 공장을 지었지요. 아주 멋들어지고 신식이라 마을 사람들은 밀을 제분 공장으로 보내기 시작합니다. 그로 인해 그 많던 풍차방앗간은 하나둘 문을 닫니다.


코르니유 영감의 풍차방앗간은 견디며 버텼지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풍차방앗간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영감은 점점 방앗간에 틀어박혀 살아갑니다. 존경받던 영감은 맨발에 구멍 난 모자를 쓰고 누더기 띠를 두를 정도로 가난해졌고요.


마을 사람 누구도 풍차방앗간에 밀을 가져가지 않는데 풍차 날개가 항상 돌고 있는 것 마을 사람들에게 수수께끼였습니다. 더구나 영감은 언제나 방앗간 문을 잠그고 다니기 때문에 느 누구도 안을 쳐다볼 수 없어서 의문은 점점 증폭되었요.


그러던 어느 날 영감의 손녀딸이 신랑감을 인사시키기 위해 코르니유 영감의 방앗간에 갑니. 문은 잠겨있고 할아버지는 없는데 사다리가 니다. 궁금한 둘은 사다리를 타고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는데 그들이 본 방앗간은 텅 비어 있었요. 휑한 방앗간먼지만 날리고 가난한 침대와 굳어 있는 빵 한 조각이 전부였지요. 터진 포대에서는 밀가루 대신 자갈과 하얀 흙만 흘러내리고요.


불쌍한 풍차방앗간은 빈 채로 날개만 돌고 있었던 거고 가련한 코르니유 영감은 저녁마다 당나귀 등에 밀가루 대신 횟가루 포대를 싣고 나와 풍차방앗간의 명예를 지키고 있었던 거지요. 


그 사실을 알게 된 손녀딸과 신랑감은 울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주었고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전해 듣고물을 흘리며 집에 있는 진짜 밀을 당나귀 등에 싣고 코르니유의 풍차방앗간으로 가져니다.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은 코르니유 영감의 풍차방앗간 일거리가 떨어지지 않게 보살핍니다. 코르니유 영감이 운명할 때까지 말이지요.


시대의 변화로 삶의 방식이 산업화 기계화 되면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설 곳을 잃게 됩니다. 코르니유 영감은  그 틈바구니 속에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던 자연적인 삶의 방식을 신의 뜻이라 여기며 온 힘을 기울여 풍차방앗간을 지키려 노력하며 살아간 사람입니다.

 

코르니유 영감이 풍차방앗간을 애정하는 태도와 지키고 싶어 한 마음이 마을 사람들을 감동시켜 기계적 제분공장으로 가던 그들의 발걸음을 다시 코르니유 영감의 풍차방앗간으로 돌려 놓았습니다. 온 힘을 다해 무언가를 사랑하고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은 뭇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줍니다.


이 책에는 알퐁스 도데가 여행한 코르시카알제리19세기 풍경과 풍물을 살펴볼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또한 여러 편의 이야기에서 다룬 프로방스의 풍경 묘사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문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이야기 속 여운은 길어서 마음속에 오래오래 되뇌게 됩니다.


알퐁스 도데를 통해 코르니유 영감과 시인 미스트랄, 바구니에 들어 있는 새끼 양, 새끼 양을 바구니에 담은 노새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밀을 실은 당나귀의 방울 소리, 도요새들의 오케스트라, 박새들의 중창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프로방스 지방의 라벤더와 로즈메리 향기를 음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나무와 참나무가 공존하는 빛 가득한 언덕 위, 제 역할을 잃은지 오래된 풍차방앗간에서 글을 쓰는 알퐁스 도데 씨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까만 밤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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