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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Sep 07. 2023

전쟁과 파리코뮌, 그럼에도

에밀 졸라 <패주> (문학동네)

프랑스의 작가 에밀 졸라(1840~1902)는 <목로주점>, <나나>, <제르미날>과 같은 작품이 유명하지만 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패주>를 읽었다. 사실 <패주>는  2021년에 국내에서 처음 번역되었다니 우리나라에 알려진 지 얼마 안 된 작품이기도 하다. 에밀 졸라의 작품 중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었지만,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파리 코뮌이 시대적  배경이라는 소개글을 읽고 에밀 졸라가 자신의 시대에 일어난 극적인 사건들을 어떻게 서술하고 바라보았는지 궁금해 읽게 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빅토르 위고가 쓴 <레 미제라블>을 통해 19세기 전반에 일어났던 전쟁, 1815년의 워털루 전쟁을 살펴보았다면 프랑스 문학의 또 다른 거장 에밀 졸라의 <패주>를 통해서 19세기 후반부인 1870년에 벌어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알고 싶었다.

전쟁의 참상


700여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의 소설은 지루하지 않게 잘 읽힌다. 그것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형태로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위해 죽고 서로 헌신하거나 배신하고 누군가는 희생되고 누군가는 도망가는 극과 극의 대립이 매 상황마다 전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작가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해 독자로 하여금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프로이센이 거대 제국이 되어 정복에 대한 열정으로 전쟁 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했는지, 프랑스 군 지휘부의 전략이 얼마나 오락가락했는지, 프랑스의 장군이 싸움터의 지리 지형도 파악하지 못했을 만큼 얼마나 전쟁에 무지하고 준비를 갖추지 않았는지에 대해 서술다.


결국 프랑스 병사들의 승리에 대한 확신과 영웅적인 희생에도 불구하고 지휘부의 전략 부재와 오판, 제2 제정의 병약함으로 인해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음을 졸라는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 결과 프랑스군은 1870년 9월 1일 스당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에 포위되어 독일군의 대포 800문의 포격을 받고 처참히 무너지고 끔찍한 고통 속에서 패배한다. 나폴레옹 3세는 백기를 들고 항복하고 8만 명의 포로들과 함께 유배지로 떠다.


스당에 차려진 프랑스군 야전병원의 풍경은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포격으로 다리가 잘리거나 팔이 날아가거나 뇌수가 보일 정도로 머리에 부상을 입은 병사들이 수도 없이 병원에 들어온다.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은 고통 없이는 들을 수 없고 병사들의 몸에서 잘린 팔과 다리가 한쪽에 쌓여 피바다 속에 산을 이루는 모습은 떠올리기가 버겁다.


전쟁은 병사들의 사지를 앗아가고 심지어 목숨을 앗아간다. 불을 뿜는 대포의 포격은 병사와 민간인을 가리지 않아서 어린아이를 돌보던 엄마의 머리가 떨어져 나가고 광장에 있던 사람 몸이 두 동강이 나고 산산이 부서진 몸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다. 도로 위에는 수천 구의 시체가 쌓고 야전 병원에서는 끔찍하고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부상당한 병사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이야기 속에서 졸라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속 사지로 내몰려 죽어간 병사들을 불러들인다. 로샤 중위가 전사고 보두앵 대위는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도 전사고 드 비뇌유 대령도 사망다. 포병대 출신 오노레와 루이, 야돌프도 전사하고 나팔수 고드도 전사한다. 알자스 태생의 민간인 바이스도 싸우다 잡혀 총살당한다.


에밀 졸라는 앙리에트의 입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탄한다. 선량한 청년들과 불쌍한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사지가 잘리고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야 하는지, 전쟁의 가증스러움을 증언한다.


파리 코뮌


읽고 쓸 줄만 아는 농부 장은 하사이고 변호사인 모리스는 지원병으로 자원 입대했다. 106연대에  소속된 둘은 농부와 지식인 사이에 존재하는 반감을 가지고 있어 모리스는 장을 적대시하고 장은 모리스에게 수치심을 느낀다. 하지만 장의 사려 깊음과 배려로 인해 모리스는 마음을 열고 둘은 형제 같은 전우애를  나다. 프로이센군에 쫓겨 패주하는 와중에 부상 당한 장을 모리스는 목숨을 걸고 구해 주고 장도 자신을 희생하면서 모리스를 챙긴다.


프랑스의 패배로 프로이센군의 포로가 된 그들은 구사일생으로 탈출 성공하지만 장은 총을 맞고 부상자가 되어 레미에 머물며 모리스의 쌍둥이 누이인 앙리에트의 간호를 받게 된다. 모리스는 패배감과 분노심에 사로잡혀 파리로 가 프로이센군과의 싸움을 계속한다.


프로이센군의 포격에 삶의 터전을 잃고 분담금 부담까지 떠안게 된 지방은 평화를 바라며 군주제의 회귀를 원하지만 파리는 강화조약은 국치라며 끝까지 항전하려는 열기로 가득하다. 프로이센과 맺은 강화조약에는 병사들의 무장 해제가 있어 분노한 모리스는 탈영해서 국민자위대에 자원한다.


프로이센군이 파리에 입성한다는 소식에 파리는 반란이 싹트고 공공집회에서는 열렬한 연설이 이어지고 광장에는 붉은색 깃발이 나부끼고 국민자위대는 중앙위원회를 선출한다. 1871년 3월 18일 파리에서는 72일 동안 파리 사회주의 자치정부, 파리 코뮌이 수립된다.


한편 프로이센과 평화조약을 체결한 국민의회는 3월 20일 베르사유에 자리 잡고 몸을 회복한 장은 베르사유 정부군에 하사로 복귀한다. 베르사유 정부군은 코뮌 수중에 있는 파리를 탈환하기 위해 대포를 쏘고 지붕을 날리고 민간인까지 살상한다. 뮌은 정부군에 쫓겨 물러서면서 파리의 곳곳에 불을 질러 화재를 일으킨다. 1871년 5월 21일부터 28일까지 베르사유정부군은  파리에 들어와 코뮌 가담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무자비하게 학살해 '피의 일주일'이라 불리는 비극적인 사건 일어난다.


이제는 프로이센군이 아니라 프랑스인들끼리 총을 쏘고 대포를 쏘고 잔혹하게 서로가 서로를 죽인다. 그 안에 형제애를 나눈 장과 모리스가 있다. 정부군인 장은 국민자위대 한 명을 칼로 찔렀는데 그가 바로 모리스다. 장의 칼을 맞고 회복하지 못한 모리스는 코뮌 마지막날 숨을 거둔다.


그럼에도


모리스가 죽자 모리스가 살아나기만을 기도하던 장과 앙리에트는 모리스의 죽음을 함께 슬퍼할 수가 없다. 장은 앙리에트를 사랑하지만 모리스를 찌른 죄책감으로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없고 부상당한 장을 돌보면서 그를 사랑하게 된 앙리에트 역시  동생을 찌른 그의 손을 맞잡을 수가 없다. 혹한 내전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함께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에밀 졸라는 장의 시각으로 피의 일주일이 지나가는 일요일 저녁 파리의 거리를 보여준다. 불타는 파리에서 총살당하는 사람들과 산하는  여자들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함께 보여준다. 잇따른 패전을 겪고 참혹한 내전을 다시 겪으며 사방에 널린 시체와 폐허더미 속에서다시 건설해야 할 세계를 상에서 장 슬프고 가장 겸허한 사내 장을 통해 보여준다.

내가 처음 읽은 에밀 졸라의 글은 소설이 아니라 기고문 '나는 고발한다'였다. 에밀 졸라는 유대인 프랑스 장교 드레퓌스가  간첩 혐의를 받고 종신형이 선고되어 외딴섬에 유배된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1898년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발표했다. 그 이후 프랑스는 드레퓌스 파와 반드레퓌스 파,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로 나뉘어 극렬한 싸움을 했고 에밀 졸라는 군 수뇌부들의 격노로 고소당하고 징역 1년 벌금 3천 프랑을 선고받고 망명을 떠난다. 그래서 1902년 질식사로 사망한 에밀 졸라의 죽음에는 반드레퓌스 파에 의한 암살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에밀 졸라는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용기있게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가치관이 반영하듯 소설 <패주>에서도 졸라는 모진 추위와 비바람에도 생명력이 깃드는 나무줄기처럼 가혹한 운명을 가졌지만 그에 걸리지 않고 땅을 일구어 곡식을 생산하는 농부의 건강한 마음을 가진 장을 통해 희망과 새로움을 야기한다.


그것이 가혹한 운명에 걸리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듯이, 극한의 환경과  고통 속에서도 한 발 한 발 딛고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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