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한 사람들,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동서문화사)

by 밝은 숲

빅토르 위고는 1802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885년에 사망했다. 그리고 그가 쓴 소설 <레 미제라블>의 시간적 배경은 장 발장이 감옥에서 출소하는 1815년을 기점으로 장 발장이 죽음에 이르는 1833년에 마무리된다. 위고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살아온 19세기를 이전의 시대와 연결시키며 보여주는데 그가 바라본 19세기의 풍경 속에는 비참한 사람들이 있다.


그 비참은 사회 시스템의 부재에서 온다. 19세기엔 프랑스에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1789년 대혁명으로 왕권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지만 다시 제정이 들어서고 전쟁이 계속되면서 사회 하층민들의 삶은 여전히 피폐했다.


선량한 가지치기 일꾼이었던 장 발장이 절도죄를 범한 것도 굶주림 때문이었다. 열심히 일을 해도 먹을거리가 없는 상황에서 굶주리는 조카들에게 빵을 먹이기 위해 장 발장은 도둑질을 했다. 위기의 상황에서 인간은 이성적이기보다는 본능적으로 행동하는데 빈곤이 죄를 불러온 셈이다.


또한 위고는 굶주림으로 여자가 추락하는 상황을 팡틴을 통해 보여준다. 부모의 보살핌 없이 고아로 자란 팡틴은 사귀던 남자에게 버림받고 미혼모가 된다. 혼자 낳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팡틴은 몽페르메이유의 여인숙 주인 떼나르디에 부부에게 아기를 맡기고 몽트뢰이유 쉬르 메르에 자리잡아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미혼모임을 들키고 공장에서 쫓겨나 일자리를 잃은 팡틴은 아이의 양육비를 보내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고 앞니를 판다. 떼나르디에 부부가 요구하는 양육비는 팡틴의 형편으론 항상 부족해서 밀린 양육비 독촉에 팡틴은 매춘부가 된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굶주림과 정신적인 피폐로 젊고 아름다웠던 팡틴은 20대의 나이에 병들어 죽는다.


빈곤의 문제는 남자와 여자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위고는 떼나르디에 부부에게 맡겨진 팡틴의 어린 딸 코제트의 비참을 세세히 묘사한다. 떼나르디에 부부는 팡틴에게는 과도한 양육비를 요구하는가 하면 어린 코제트는 하녀로 부리는데 추운 겨울에도 맨발에 누더기를 걸친 채 마당을 쓸곤 하는 코제트의 모습이 묘사된다.


코제트는 여인숙의 층계 밑 구석에 짚요를 깔고 잠을 청하고 끼니는 떼나르디에 부부가 개에게 주는 먹이를 나눠 먹는다. 그래서 8살인 코제트는 6살로 보일 만큼 작고 야위었다. 구멍 난 누더기 속 코제트의 몸은 떼나르디에 부인에게 일상적으로 얻어맞아 멍투성이다.


아이다운 천진난만함과 무구함을 경험하지 못하고 노동과 욕설과 매질로 인해 코제트의 표정은 침울하고 몸은 앙상하다. 팡틴의 죽음을 겪고 코제트를 키우기로 약속한 장 발장이 여인숙에 와 코제트를 데려갈 때까지 어린 코제트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공포이며 지옥인지 위고의 묘사는 가슴 아프다.

19세기 어린이가 겪는 또 다른 빈곤의 모습으로 소년 가브로슈가 있다. 가브로슈는 떼나르디에 부부의 아들로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파리의 부랑아가 된다. 몇 끼를 굶는다거나 거리 어디에선가 잠을 청하는 것이 일상인 이 파리의 부랑아는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고 거칠 것 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소년 가브로슈는 살기 위해 훔치기도 하지만 자기 코가 석 자라도 남을 돕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자신은 몇 끼니를 굶고도 돈이 떨어진 마뵈프 노인에게 돈지갑을 던져 준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자신보다 어린아이 둘을 - 가브로슈는 모르지만 그의 부모가 남에게 줘 버린 아이들이므로 가브로슈의 동생들이다. -위해 자신의 빵을 나눠 주고 잠자리를 만들어준다.


그렇게 약하거나 불쌍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마음씨를 가진 가브로슈는 파리의 바리케이드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고 굶주림 없는 세상을 꿈꾸다 총에 맞아 숨을 거두게 된다.


한편 위고는 자베르를 통해 법과 질서를 옹호하는 형사의 내적 갈등과 선택에 대해 묘사한다.


형사 자베르에게 장 발장은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하는 중범죄인이다. 장 발장은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중죄인이고 출소하고는 미리엘 주교의 은그릇을 훔치고 외딴 길에서 만난 아이의 동전을 갈취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마들렌느 씨로 살던 장 발장이 자백하고 뚤롱의 감옥에 다시 수감된 후에는 바다에 빠져 죽은 것처럼 위장하고 숨어 살았다. 그런 장 발장을 형사 자베르는 오랜 세월 동안 집요하게 쫓는다.


하지만 형사 자베르에게 내적 갈등이 찾아온다. 1832년 6월 파리의 바리케이드에서 첩자임을 들켜 총살형을 기다리고 있던 자베르를 장 발장이 살려주었기 때문이다. 자베르 입장에서 볼 때 장 발장은 자신을 죽이는 게 마땅했다. 혹은 다른 이들에 의해 죽게 내버려 두면 장 발장 자신이 자유롭게 살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장 발장은 자신을 용서하고 살려주었다.


더구나 바리케이드 안에서 총에 맞은 마리우스를 살리려고 장 발장은 파리의 지하수로에 숨어들어 목숨을 걸고 빠져나왔으며 그 지하수로 출구에서 자베르를 다시 만났을 때는 집 주소를 알려주며 자신을 잡아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베르는 십 년 넘게 쫓은 장 발장을 놓아주고 만다.


자베르의 머릿속에서 장 발장은 빵을 훔치고 탈옥을 시도해 19년 간 감옥살이 한 죄인의 모습이 전부였는데 자신을 용서하고 살려준 장 발장의 모습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화재 속에서 아이들을 구하고 마차 밑에 깔린 노인을 살린 일, 위태로운 배 위에서 선원을 살린 일, 바리케이드에서 마리우스를 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장 발장의 모습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은 죄인이 할 일이 아니라 고귀한 영혼을 가진 이가 하는 일이었다.


자베르는 장 발장을 죄인으로 단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책임감이 남다른 형사로서 자베르는 자신의 결정을 용납하기 어려웠다. 법과 질서를 지키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법과 질서, 처벌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고 의무로써 지켜왔던 신념이 무너져 자베르는 삶의 길을 잃어버렸다. 결국 자베르는 센 강의 거센 물살 속으로 뛰어내린다.


위고는 소설 <레 미제라블>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탓으로 남자가 낙오되고 굶주림으로 여자가 타락하고 빈곤함으로 아이들이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자기 시대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시대적 상황이 있고 사상의 발전이 있고 긴장감이 흐르고 낭만이 있고 사회 전반에 걸친 고찰이 있다. 그래서 여섯 권의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묘한 감동과 여운이 감돈다.


1862년에 출판된 <레 미제라블>은 그 당시에도 노동자들이 돈을 모아 책을 사서 돌려 읽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교육과 학문으로 시대의 어둠을 빛나는 광명으로 변화시키고 싶어 한 위고의 의도가 빛을 발한 게 아닌가 싶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메모장을 정리하고 글을 마무리하면서 위고가 바랐던 인류의 진보가 글을 쓰고 읽음으로써 여전히 유효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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