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라는 전제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문학동네)

by 밝은 숲

인생을 살다 보면 여태까지와 다른 식으로 세상이 보이게 되는 때가 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그 혁명과도 같은 변화는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떤 일을 겪으면서 발생하는데 그 후의 삶은 이전과는 른 무언가가 있다.


미국의 작가 레이먼드 카버(1938~1988)의 단편 소설 '대성당'의 화자인 '나'도 마찬가지다. 소설 속 화자는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 그냥 직장에 다니며 아내와 둘이 산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는 게 일상이다.


어느 날 아내의 오랜 친구인 맹인이 자신의 집에 하룻밤 머물기 위해 찾아온다. 눈이 안 보이는 맹인에게는 로버트라는 이름이 있지만 화자는 로버트를 맹인으로 칭한다. 그것은 작가가 화자를 통해 눈이 안 보이는 사람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과 화자가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의도 장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화자는 맹인 로버트가 아내의 오래된 친구라서 신경 쓰이고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라 불편했다. 하지만 그를 맞이하기 위한 아내의 환대를 방해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어색하고 어정쩡하고 불편하고 딱히 반갑지 않은 손님을 집에 맞아들이게 된다.


로버트는 건장한 체격에 리는 벗어지고 덥수룩한 턱수염을 가지고 있고 어깨가 구부정한 사십 대 후반의 남자로 묘사된다. 푸짐한 식사를 하고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고 화자는 로버트에게 마리화나를 권한다. 처음 피워본다는 미리화나를 로버트는 거부감 없이 응하고 적당한 선에서 멈춘다.


아내는 잠 들고 화자와 로버트는 TV를 보는데 교회와 중세에 관한 프로그램이다. TV에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리스본과 독일에 있는 대성당들이 나온다. 화자는 TV를 보고 보이지 않는 로버트는 TV를 듣는다. 로버트는 화자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하고 화자는 로버트에게 대성당의 모습을 말로 설명해주지만 보이지 않는 로버트는 감이 오지 않는다.


화자는 로버트에게 어떻게든지 설명해 주고 싶고 로버트는 무엇이든지 배우고 싶어 한다. 그런 둘이 대화하는 중에 로버트가 화자에게 묻는다.


"그런데 말이야. 이런 질문을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뭘 좀 물어봐도 되겠지? 예, 아니요라고만 말하면 되는 간단한 질문이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지. 따지는 건 아니야. 자네가 여기 주인이니까. 나는 그저 자네에게 그게 어떤 형태로든 신앙심이 있느냐고 묻고 싶은 거야. 이런 걸 물어보면 실례인가?"

"뭘 믿는 건 없다고 봐야겠죠. 아무것도 안 믿어요. 그래서 가끔은 힘듭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물론이네."

"그렇습니다." ( p 307~308)


로버트는 화자에게 두꺼운 종이와 펜을 부탁하고는 TV에서 보여지는 대성당을 그려보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화자는 펜을 쥐고 로버트는 펜을 쥔 화자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는다. 그들은 네모를 그리고 지붕을 그리고 첨탑을 그린다. TV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화자의 손 위에는 로버트의 손이 있어 둘은 함께 아치 모양 창문을 그리고 버팀도리를 그리고 큰문을 그린다.


소파에서 잠자던 아내가 깨어 뭐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화자 대신 로버트가 대답한다.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고, 진짜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화자는 아내의 질문에도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로버트는 화자에게 이젠 대성당 안에 사람들을 그려보자며 계속해서 함께 펜을 쥔 손을 움직이며 림을 그려 나간다.


소설 속 화자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자는 사랑해서 아내와 결혼했겠지만 믿음이 전제되지 않은 사랑이라 불안했을 것이다. 믿음이 없어서 확신이 없고 확신이 없어서 사는 게 허무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알코올이나 마리화나에 의존했을 것이다.


그런 화자가 눈은 안 보이지만 인간의 영혼을 볼 수 있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로버트를 만나 그와 교감하고 공감하면서 조금씩 마음이 열린다. 자신의 손으로 로버트의 손을 안내하며 대성당을 함께 그려 나가면서 믿음을 가지고 사는 순간을 경험한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경험 때문에 화자는 감동하고 환희에 차 오른다. 편견과 불안과 냉소에 휩싸여 살던 화자에게 로버트는 마음을 나누며 교감하는 방법과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대성당'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는 것처럼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삶과 달라서 인생을 새롭게 보게 만들고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다. 나는 레이먼드 카버가 쓴 단편소설 '대성당'을 읽으면서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무엇을 믿고 사는지 생각해 본다.


우주의 섭리 속에서, 자비롭지만 때론 가혹하기도 한 자연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선을 만들면서 살아가는 것, 그 선이 돌고 돌아 선순환한다는 것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지혜움을 동반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너무 많이 기대하지 않고 다만 묵묵히 오늘의 할 일을 하며 충분히 여유롭게 공들이며 살아가는 것, 래서 마음이 풍요롭고 세상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려고 나는 노력하는 것 같다.


불안하고 우울하고 조급하고 힘겨운 삶을 산 적이 있지만 어느 순간 나는 세상과 자연과 나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면서 내 마음 속에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믿음이라는 확신이, 충만이, 여유로움이, 평화로움이 들어선 것 같다.


레이먼드 카버는 '대성당'을 통해 한 사람의 내면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현장을 밀도있게 포착하고 묘사해 그려냈다. 그래서 소설 '대성당'은 믿음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게 만드는 주 인상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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