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문학동네)
미국의 작가 레이먼드 카버가 쓴 책 <대성당>에는 열두 편의 단편소설이 들어있다. 1938년 목재사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레이먼드는 19살에 결혼해 아이가 생기면서 어린 나이에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며 살아야 했다. 삶이 고단하고 팍팍해서였을까, 이야기 속 인물들은 대부분 무기력하거나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과 이별해 있거나 황폐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중 두 편은 열 편의 이야기 속 인물들과는 다른 유형의 분위기를 가진 인물들이다. 작가의 삶에 변화가 오고 세상을 보는 눈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나타난 변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두 편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다.
앤과 하워드는 여덟 살짜리 아들 스코티를 키우고 있는 부부다. 아이는 집안의 꽃이고 하워드는 자신의 일에 만족하며 직장에 다니고 앤은 얼마 안 남은 여덟 살 아들의 생일케이크를 예약했다.
굵은 목의 늙은 빵집 주인은 퉁명스러웠고 허접했다. 그가 불편했지만 앤은 아들의 생일에 맞춰 초콜릿 케이크를 예약하고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월요일 아침, 생일을 맞은 스코티는 학교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는 사고 난 상황을 엄마에게 이야기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놀란 앤은 남편에게 전화하고 그들은 아이를 입원시킨다. 아이는 깊은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지만 며칠 동안 깨어나지 않았고 - 아니, 딱 한 번 눈을 떴지만 - 사흘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동안 병원에서는 아이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검사와 시도를 해 보았고 의사는 진심으로 앤과 하워드를 위로했다. 아이를 잃은 부부는 부검이 남은 아이를 병원에 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가 없는 허전한 집에 깊은 밤, 또 전화벨이 울린다. 하워드와 앤이 씻기 위해 잠깐씩 집에 들렀을 때 아이의 상태 때문에 불안한 그들이 허겁지겁 전화를 받았을 때 전화 속 남자가 하는 말은 앤과 하워드의 신경을 자극했다.
앤은 빵집 주인이 생일 케이크 때문에 밤마다 전화를 건 거라고 확신하고 화가 나서 빵집을 찾아간다. 밤늦게까지 빵을 굽느라 불이 켜진 빵집에 부부는 공격적으로 들어가지만 빵집 주인은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일해야 먹고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주문한 지 사흘이나 지난 케이크를 가져갈 건지 말 건지 묻는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분노가 되어 앤은 빵집 주인에게 퍼붓는다. 그제야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빵집 주인은 밀대를 내려놓고 앞치마도 던져 놓고 부부를 의자에 앉힌다. 그리고나서 자신도 함께 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얼마나 미안한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거요. 내 말을 잘 들어요. 나는 빵장수일 뿐이라오. 다른 뭐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소. ...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일이 변명이 될 순 없겠지요. 그러나 진심으로 미안하게 됐습니다. 자제분에게 일어난 일은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한 일도 죄송합니다. “
그렇게 말하고 그는 부부에게 따뜻한 빵과 커피를 내 온다. 부부는 갑자기 허기를 느끼고 부부가 먹는 것을 지켜보는 빵집 주인은 기뻐한다. 그리고 그는 앤과 하워드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외로움에 대해서, 중년 이후 삶에 대한 의심과 한계에 대해서, 그리고 빵을 만드는 일의 즐거움과 보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빵집 주인은 계속헤서 부부에게 자신이 만든 빵을 권하고 앤과 하워드는 그가 만든 빵들을 먹으며 밤새도록 이야기 한다. 아침 햇살이 떠오르도록…
이 이야기는 사는 처지가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성격이 다른 이들이 인생에서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불행한 일들, 빵집 주인은 예전에 겪었던 일들, 순탄하고 만족스럽게 살고 있던 앤과 하워드에게는 지금 일어난 비극에 대해 미안해하고 공감하고 함께 나누면서 일어나는 따뜻함에 관한 것이다.
빵집 주인은 먹고살기 위해 깊은 밤까지 힘들게 일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에게 케이크를 만드는 일은 먹고살기 위한 일이고 노동의 대가를 받기 위해 그는 자신이 일하는 밤 시간에 전화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생일날 아이에게 일어난 비극을 듣고 빵집 주인은 진심으로 앤과 하워드에게 미안해했고 그들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고 그들을 위로했다. 자신이 밤새워 만든 빵을 대접하며 자신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빵을 슬픔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앤과 하워드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기뻐한다.
아이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과 그들에게 닥친 비극으로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앤과 하워드는 빵집 주인의 진솔한 사과와 따뜻한 위로에 마음이 풀려 슬픔으로 닫혀있던 허기가 몰려왔을 것이다.
빵집 주인은 지나온 그리고 현재에도 지속되는 자신의 녹록지 않은 삶을 이야기하고, 중산층으로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아왔던 앤과 하워드는 자신들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에 대해 서로 나누고 공감했을 것이다.
빵집 주인이 빵을 주는 행위는 사실 별것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빵 속에 빵집 주인의 진심이 들어가 있다면, 아이를 잃은 이 젊은 부부가 빵을 먹고 기운을 차리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만든 빵을 대접했다면 빵을 나누는 행위는 별것 아닌 일이 아니라 별것이 된다.
별것 아닌 일들로 이루어진 일상 속에 진심을 담은 어떤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거라고 레이먼드 카버는 이 소설을 통해 말한다.
힘들고 어렵고 때론 고통스럽고 불행한 일이 닥치더라도 일상 속 행위 속에 진심이 들어있고, 그 진심을 나누고 위로하고 함께 하는 일에 마음을 연다면 별것 아닌 일들이 커다란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도움으로 불행은 불행으로 그치지 않고 한 발짝 한 발짝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언제라도 빵냄새가 꽃향기보다 좋다고 믿는 빵집 주인의 진심이 공감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