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의 위치

생각하기 나름

by 삶과 생각

이 글을 떠올리게 된 것은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이다.

캐스터분께서 잘못 말한게 나에게는 참 와닿게 들렸다.


"대위기에 처하고, 아 위기에 대처하고" 라며 말을 바꾸셨다.

두 문장 모두 말은 된다.


'대위기에 처하다', '위기에 대처하다'

이 두 문장의 차이는 단 한글자 '대'자의 위치이다.

그러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대위기에 처해있냐, 위기에 직면해 있나

위기에 대처하냐, 처해진 위기에 잘 대처하나


글자 하나의 위치 차이로 저렇게 의미가 달라지는구나.


대위기에 처해 있어서 상실감과 무력감으로 자신 혹은 팀을 그렇게 계속 둘 것이냐.

위기에 대처하며 자존감을 끌어올려 앞으로 더 전진 할 것이냐.


그럼 위기란 무엇일까.

유재석님이 말씀하셨던 "위기를 모르는게 진짜 위기다"

계속해서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보며 내가 혹은 주변이 어떤 상황인지 면밀하게 파악해야한다.

'지금이 위기인가? 안정기인가?', '조금 있으면 나의 상황이 어떻게 되지?', '그런 상황이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러면 내 주변은 어떻게 되지?'


물론 위기란 십중팔구 예고없이 찾아온다. 10번 중 2번이라도 예고가 된다면 정말 다행인 격.

그렇다하더라도 최소한의 준비를 하고 있다면 조금은 덜 타격을 받지 않을까.

혹자는 이야기한다. '아니 매번 그렇게 위기도 생각하면 피곤해서 어떻게 살아?'

맞는 말이다. 틀리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 역시 생각의 차이.


매사에 위기를 생각하면 분명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예고없이 찾아오는 위기를 조금이라도 대처하고 있었다면 그 결과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과는 훨씬 달라질 것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피곤하고 어렵다고 누구나 생각하지는 않는 것.


대위기에 처할 것이냐, 위기에 대처할 것이냐는 '나의 선택'이다.

그 글자를 어디에 배치할 것이냐, 혹은 그렇게 배치되도록 유도할 것이냐. 이것 역시 '나의 선택'이다.


나를 계속해서 돌아보자, 주변을 계속해서 신경쓰자. 그렇게 다가 올 위기를 미리 알고 대처하거나 피해를 최소화 시켜보자.


나의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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