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가을이었다.

by 지한


몇 년 전 어느 가을 아침, 엄마가 머리가 콕콕 쑤신다고 했다. "에이, 그냥 편두통이겠지. 나도 그럴 때 있어."라고 하면서 내 손은 바쁘게 가방을 뒤적거리면서 타이레놀을 찾고 있었고 약국이 문 여는 시간까지 기다릴 여유도 없었다. 편의점에 가서 상비약 몇 가지를 사오겠다고 엄마한테 말하려고 했다.


엄마의 얼굴이 더 창백해져 있었다. 창백하다기 보다는 누렇게 보이기도 했다. 엄마는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나서도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기분나쁘게 콕콕 한 부위가 쑤신다고도 했다. 열이 있는 건가, 엄마의 이마를 짚고 손을 잡아보았다. 나보다 한참 덥게 느껴지는 엄마의 손을 몇 번 주무르다가 좀 눈물이 날 뻔 했다. 나까지 당황스러워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착하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를 생각하자.

엄마는 한 시간을 넘게 참다가 병원에 가자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6천 원도 안나오는 거리가 왜 이렇게 길고 신호가 많이 걸리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9시가 되기도 전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나는 한번 더 당황했다.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인가. 세상 우리 동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이 병원을 찾기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기실이 북적였다. 이게 평일 9시 이전의 병원 대기실의 원래 모습인가. 양손으로 나를 붙잡고 반쯤 기대있는 엄마가 앉을 자리 한쪽도 없었다. 당황스럽다 못해 헛웃음이 났다가 화가 날 지경이었다. 왜 타이레놀 상비약 약국 여는 시간 따위를 고민하고 있었을까, 그 시간에 병원에 왔다면 진작 접수를 하고도 남았을 것을.



번호표를 뽑고 신경과 접수를 하고 조금 기다렸다가 진료를 봤다. 의사 선생님은 엄마의 증상이나 눈 움직임, 맥박을 간단하게 체크하고 한숨을 푹 쉬며 전형적인 편두통 증상이니 그냥 쉬면 나아진다고 했다. 1분도 안되서 끝난 진료에 허탈하기도 했지만 내가 듣도보도 못한 병이 아니라 편두통 정도라니 좀 다행인가 싶기도 했다. 주사 한 대와 며칠 간의 약을 처방받고 엄마 손을 잡고 진료실을 나왔다. 여전히 엄마는 양손으로 나를 잡고 있었다.


"아니, 의사 너무 성의없는거 아냐? 아직 머리 아픈거지? 그러게 엄마는 왜 빨리 병원가자고 안했냐구" 조금 흥분한 채로 씩씩거리는 나에게 엄마는 빨리 주사 맞고 집에 가자고 했다. 병원은 여전히 정신 없었다.

아, 이럴 땐 이런 말투, 이런 단어들이 나가는 게 아니라고 일곱 살때부터 배웠는데.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동안 나는 말이 없었고 엄마는 등받이에 푹 기대있었다. 아무리 기대도 앉은 키가 나보다 작아보였다.




그 때는 얼추 일어선 키가 비슷했는데. 시간이 몇 년 지나 지금은 엄마가 아무리 꼿꼿이 서서 어깨를 펴 봐도 나보다 키가 작다. 조금 휘어진 다리와 구부정한 목과 어깨가 눈에 보일 때마다 나는 걱정 가득한 마음과는 반대로 엄마에게 툭툭 잔소리를 뱉고야 만다. 올해부터는 핸드폰 볼 때 뒤로 젖혀서 보고 가끔은 한의원 같은 데라도 가서 다리 치료도 좀 받으라고. 엄마는 영혼없는 대답으로 알겠다고 말만 하면서 돋보기를 코 끝에 걸친 채 골프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거, 엄마 새끼(자식=나)가 얘기하는데 남의 집 귀한 자식이 큰 돈 버는 것만 계속 보네" 농담 섞인 말 한 마디로 엄마의 주의를 좀 끌어보려고 하는데 요즘은 이 마저도 먹히지 않는다. 나도 언젠가 사춘기 때, 혹은 아직까지도 엄마의 말을 귓등도 듣지 않을 때 엄마는 내가 딱 이만큼 얄미우려나.



한살씩 먹어가면서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는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도 나한테 기댈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앞으로는 그럴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 아직 나는 준비 안된 부분이 더 많은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 나이 앞자리를 보고 힉 소리나게 놀란다. 서른 살,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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