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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Nov 01. 2022

하우 아 유, 파인 땡큐?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에게 나는 잘 지냈냐는 인사 대신, 어찌 지내고 있냐고 묻는다. 이건 잘 지냈냐는 말이 주는 부담감이 있을 수도 있다는 내 생각 때문이다. 잘 지냈냐고 묻는 순간 상대는 그래왔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같고, 그건 상대방의 잘 지내지는 못했던 시간들은 궁금하지 않고 넌 무조건 잘 지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발 오해하지 말고, 이건 진짜 순전히, 내 생각이다.



사실 나와 연락이 닿는 모두가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얼마 전 대학 시절 제법 친했던 동기에게 어찌 지내냐고 연락을 했더니 3일만에 답장이 와서는 "나는 그럭저럭 살아ㅋㅋ 너는 잘 지내라ㅋㅋㅋ" 라고 했다.


간만에 불쑥 연락와서 어찌 지내냐고 묻는 나와는 카톡 따위도 하기 싫다는 뜻인지, 아니면 진짜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으니까 나라도 잘 살아라는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늘 살가웠던 친구가 그렇게 답장을 보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치만 무슨 이유였건 간에 마음이 좀 쓰였고 기분이 좀 상했다. 그 친구가 좋아했던 커피 기프티콘이라도 보내서 무슨 일이냐며 친구를 좀 달래볼까 하다가 괜한 오지랖에 질려버릴 수도 있겠다 싶어서 관뒀다. 아직 카톡방은 남아있지만 앞으로 두 번 다시 먼저 안부를 물을 일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난 쪼잔하니까.



하우 아 유? 파인 땡큐, 앤드 유?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라 그런가, 우리는 잘 지내냐는 물음에는 항상 잘 지낸다고 대답을 하고, 어찌 지내냐고 물었을 때는 그냥 지낸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당신이 늘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 늘 잘먹고 잘살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은 우산없이 나갔는데 소나기가 쏟아지는 거지같은 날이 있는 거고, 다 만든 업무용 파일을 저장 버튼을 누르지 않아 날려먹는 날도 있는 거고, 아니면 이유없이 우울하고 무기력한 그런 날도 가끔 있는거고. 그런 일 때문이라면 잘 지냈다고 하지는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어떤 날은 어찌 지내냐는 물음에,

나는 잘살아, 너는 어찌 지내? 라고 당신이 나의 안부를 물어오기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나서 서로 오늘 하루 힘들었다고 말해도 좋고,

오늘은 특별히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좋네, 다음에 시간 내서 꼭 한번 보자,는 빈말이라도 충분히 좋을 것 같다. 모두가 Fine하고 안녕하고 잘먹고 잘사는 하루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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