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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Nov 07. 2022

승률 1% 경기의 주인공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바둑TV를 보게 되었다. 신진서 9단과 최정 9단이 두는 삼성화재배 결승이 한창이었다. 이번 경기에서는 신진서 9단이 흑돌, 최정 9단이 백돌을 잡고 있었다.





양쪽 모두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흑돌과 백돌로 바둑판을 채워나가고 있다는 면에서는 대국이 한창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해설가의 탄식이라던가 복기 해설, 화면 한편에 나오고 있는 승률 그래프를 보면서도 알 수 있었다. 백돌이 거의 99% 확률로 지고 있는 경기, 흑돌이 한 수를 둘 때마다 백돌의 승률은 거의 보이지 않다시피 했다. 백돌은 공격을 시도했다가, 방어도 했다가, 상황을 바꿔보려고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 초반에 흑돌이 탄탄하게 다져놓은 전략에는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신진서 9단은 200여 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고 결승에서 완벽한 승리를 가져갔다.



바둑의 비읍도 모르기 때문에, 대국이 끝나고 몇몇 뉴스 기사나 바둑신문에서 기사를 찾아보았다.

이번 삼성화재배 결승 대국은

1. 메이저 대회의 결승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성(性) 대결(오해 마시길, 정말로 성별이 다르다는 의미일 뿐)이었고,

2. 최근 바둑계에서 떠오르고 있는 여제女帝와 남제男帝 간의 대국

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지만, 불쑥불쑥 승리를 하고 결승까지 올라오고야 만 최정 9단의 행보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판의 승패가 거의 정해졌다고 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담담하게 수를 놓는 승부사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감히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매 승부를 즐길 수는 없을 것이다. 숨이 턱턱 막혀오고 이번 판의 승패가 앞으로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결코 유리한 위치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어차피 불계 승부로 끝이 날 거, 그냥 돌을 던져버렸을 것 같다.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바뀌는 것이 없으므로. 그리고 그 이후는 자괴감과 자책감에 은퇴를 고민하지 않았을까. 더 이상 바둑판을 쳐다보지도 않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런 부담감과 압박감에, 지는 것이 싫어서 바둑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어느 기사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침착하게 수를 두는 최정 9단을 보며 나는 화면에 있는 승률 그래프는 잠시 제쳐두고 오롯이 그녀의 편이고 싶었다. 최정 9단이 갑자기 묘수를 발휘해서 승부를 뒤집는다거나 경기 막판에 대마를 잡아서 끝내 승리하고 만다는 시나리오보다는, 그저 최정 9단의 다음 수, 그리고 또 다음 수가 계속 이어지기를 응원했다. 승률 그래프 간절함과 절박함까지는 정확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흑 불계승이 판정 나기까지의 백의 한 수 한 수를 의미 없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세상 어느 일이든 누구에게나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일이 있고,

설사 그 일을 이루지 못했다 할지라도 자신의 노력을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하지는 말 것.

결과나 성과로 자신의 노력을 재단질 하거나 평가하지는 말 것. 그런 일에 스스로 상처받고 주저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바둑판을 90도 회전시켜 놓아도 모르고 봤을 바둑 까막눈이지만 오늘 경기를 끝까지 다 봤다. 열두 살 때 고작 한 달 배웠을 뿐인데 이게 이렇게 감동적인 스포츠였나.




 ↓ 사진 인용기사 ↓

https://www.cyberoro.com/news/news_view.oro?div_no=A1&num=529280&pageNo=1&cmt_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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