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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Nov 21. 2022

여기 코로나 환자 하나 추가요

3차 접종까지는 야무지게 끝마쳤고 가족 친척들이 코로나에 걸린 줄도 모르고 함께 식사를 하는 중에도 코로나에 걸린 일이 없었기에, 나는 평생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 줄 알았다.

메르스나 폐렴, 독감이라던가 심지어는 평소에 환절기 감기조차 앓은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기 때문에 이번 코로나도 몇 년 간 그랬던 것처럼 무사히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나는 여태까지 확진자와 접촉을 하고 함께 밥을 먹고 잠도 잤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얘기를 하고 다녔다. 하지만 늘 엄마가 말하는 "입이 보살이다"라는 말처럼 이렇게 뒷북을 친다. 서른의 마무리를 코로나로 하게 생겼으니 원통하고 분하다.


첫 시작은 경미한 감기 기운이었다. 입을 벌리고 자서 목이 아픈 거라고 생각했다. 여느 때처럼 아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잠을 깨고 한 시간 정도 조깅도 했다. 땀을 빼고 샤워를 하고 두 번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나니 상쾌한 기분이 들면서 컨디션이 100% 돌아왔다고 확신했다. 늘 지켜오던 루틴대로 자소설, 아니 자소서를 쓰고 약간 따끔거리는 목으로 면접 발성을 연습해보고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이면 다 나아있을 나를 상상하면서.


그리고 착각은 병이라는 말처럼 진짜 병이 되었다. 진짜 병이었다. 다음날 오전은 어찌저찌 보냈다가 오후가 되어서 평소 루틴에는 없었던 낮잠이란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침대에 누웠다가 다음날 아침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환갑을 바라보는 엄마의 부축을 받으며 주말 오전에 응급실에 도착했고, 30분 정도를 더 기다리고 나서야 체온을 겨우 잴 수 있었다. 39.8도. 체온을 쟀던 간호사는 재차 숫자를 확인하며 지금 병원 내 격리병동에는 자리가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며 친절하게 119라는 번호를 알려줬고, 나는 TV에서나 보던 구급차에 타고 집에서 좀 떨어진 병원으로 안전하고 빠르게 실려가게 되었다. 39도를 넘는 열은 도저히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다른 병원에 도착해서도 병원 내부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출입구 옆에 마련된 컨테이너 박스에서 주사 한 대와 하루치 약을 처방받고 열이 떨어지면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결국 내가 코로나에 걸렸구나'와 '이제 좀 살 것 같다'를 오가는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격리 병동이 부족해서, 인력이 부족해서 현장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사 한 대를 맞기까지 1시간이 넘게 이리저리 이동해야만 했고 도착해서도 겨우 컨테이너 박스 안에 있는 간이 침대에서 해열주사 한 대를 맞고 처방은 끝이 났다. 카톡과 문자메시지로 오는 확진자 방역 지침은 너무 길어서 한번에 다 읽고 나서 외우기에는 벅찬 느낌이었고 이걸 노인 분들이 읽으면 약을 제대로 처방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보건소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 하필이면 머리가 지끈거리던 참이라 제대로 대답을 했는지도 모르겠고 혼자 사는 사람이었다면 이 상황이 좀 까마득했을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집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수건을 따로 쓰고 밥도 반찬도 따로 덜어서 먹는 격리자의 생활을 하고 있다. 약간의 수고로움이 나머지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길 바라며 남은 격리기간도 슬기롭게 보낼 수 있또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밤새 앓았던 근육통과 고열을 생각하니 두번 다시는 걸리고 싶지 않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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