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초에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중학교 때부터 꽤나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고 아직까지도 연락을 하는 딱 하나뿐인 친구, 이 친구가 이 말을 들으면 부담스러워서 기겁을 할지도 모르지만 난 너 말곤 이렇게 술약속이 고픈 친구가 없단다, 얘야.
오늘 오전 친구가 먼저 연락이 왔다. 올해 초부터 꼭 한번은 만나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내 스스로 걸어버린 전제가 너무 강력했다. '취업을 하면 이 친구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해서 같이 밥먹고 술먹자고 하는 것'이었는데 아직 취업을 못했고, 그래서 가끔은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만나자고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가끔은 버스비가 아까워서 걸어다녔고, 면접에서 떨어진 날 동전을 털어서 편의점에 갔는데 하필이면 100원이 모자라서 소주 한 병을 못사고 결국은 안주도 없이 팩소주를 사서 마시고 고꾸라져 잤단 희비극을 말하는 게, 밥벌이에 찌들린 직장인 앞에서 그런 궁상맞은 개그를 해봐야 초라해지는 건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벌이라는게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나만큼이나 간절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았고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실력을 갖춘 신입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약속을 잡는 날도 친구의 스케줄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나야 이제 연말까지 바쁠 일은 드물 것 같으니, 출장을 앞두고 잠시 시간이 나는 날 만나서 밥 한끼 하는 걸로 약속을 잡았다.
이게 얼마만에 만나는 사람인지, 벌써부터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취업 그까이꺼를 못해서 면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딱히 할 얘기도 없고. 몇 안되는 얘깃거리를 꺼내지도 못하고 만지작거리기만 하다가 돌아올 것 같아서 벌써부터 좀 허탈하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친구의 직장 생활 얘기는 궁금하기도 하구. 사람 마음은 참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아이고, 취업 그게 뭐 대수라고. 친구 만나서 밥 한 끼 먹고 올 일이 이렇게 생각이 많아질 일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