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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Nov 04. 2022

사주카페 갔다 온 썰 푼다

조금밖에 안쫄았다. 진짜다..

나는 고분고분한 사람인데 인생은 왜 고분고분하지 않은 걸까, 내가 왜 취업이 되지 않고 있는지 엄마도 아빠도 구십 넘은 할아버지도 그리고 남들도 궁금해 할때 즈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사주카페라는 곳을 가봤다. 2000년대 초반쯤에서 멈춰버린 가게 인테리어와 메뉴판을 보고 내가 사주카페에 온 것인지 과거로 여행을 시작하는 곳의 문을 연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메뉴판은 있지만 코로나 때문에 음료 제공은 안되는 사주카페. 바깥에서 사온 커피도 마스크를 잠시 내리고서야 마실 수 있는 그곳. 나 말고도 8팀이나 되는 20대 젊은 청춘들이 대기하고 있던 그 사주카페에서 나는 9번 번호표를 받아들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커플들끼리 온 팀도 있었고, 아주머니들끼리 온 팀도 있었고, 나처럼 모자를 푹 눌러쓰고 혼자 온 사람도 있었다. 다들 무엇 때문에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이 너무 많아서 온 건 아닐 확률이 높고, 나처럼 일이 풀리지 않음을 느꼈거나 앞으로 어떻게, 뭘 해먹고 살아가면 좋을지 고민이 많아서 온 사람들이겠지 싶은 생각을 했다.


카페 한 켠에서 천으로 된 파티션을 쳐놓고 상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기시간이 길고 지루할까봐 걱정했는데 남의 사주풀이를 듣고 있자니 시간이 아주 잘 갔다. 사주를 봐주신다는 그분은 굉장히 불친절하고 퉁명스러운 말투였지만 사주카페에 있는 강아지는 그렇지 않았다.

포메라니언 특유의 땡그란 눈망울을 굴리면서 손님들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그 덕분에 나같은 쫄보는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어떻게 서른이 되도록 사주카페 혼자 가는 것에 대해 겁을 먹냐 그런 말을 하겠지만, 나는 그정도로 간이 작다. 이건 사주에도 쓰여있다고 그랬다.



8팀의 손님이 사주를 봐주시는 분(=사주 선생님)으로부터 조언도 듣고 야단도 듣고 박수를 치며 깔깔 웃기도 하다가 나가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사주 선생님은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아주 딴판이셨다. 밝은 노랑으로 탈색한 머리에 귀에는 피어싱을 두 세 개쯤 하고 있었고, 몇 년 전쯤 유행했던 굵은 검정뿔테 안경을 끼고 힙합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사주 선생님은 날 보자마자 "뭐야, 왔으면 앉아" 라고 하셨고 나는 고분고분하니까 짧게 네,라고 대답을 하며 맞은 편에 앉았다. 그리고 음력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까지 또박또박 불러드리자마자 그분은 시커먼 뿔테 안경 너머로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뭐야, 10년 놀았잖아."


아... 밖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 재밌게 논 건 아니고 그냥 일이 잘 안풀려서요"라고 지지않고 대답하니 그게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라고 했다. 세상에 뭐 이런 사주가 다 있나 싶었지만 그 분이 하는 말을 차분히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하고싶은 말 궁금한 것들은 잠시 참아보기로 했다.

그분의 말을 요약하자면, 나는 뭔갈 끊임없이 파고들어 공부를 해야하는 사람이고, 그게 이과면 좋은데 이미 문과를 졸업해버렸으니, 그 재주로 글을 써야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참 그 괄괄한 분의 얘기를 듣다가 황송하게도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에, "글을 써야하는 사람은 뭐에요? 작가에요? 아니면 그냥 일기라도 쓰면서 행복하라는 말이에요?"라고 물으니 사주에는 머리가 좋다고 나오는데 왜 말귀를 못알아듣냐고 거하게 한소리 들었다. 공문서든 이메일이든 보고서든 블로그든 일기든, 글을 쓸 일이 있으면 무조건 글을 쓰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지 왜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해서 나의 호기심 세포를 자극하신걸까. 그 외에도 몇 가지 질문을 더 하고 욕을 몇 바가지 더 들어먹고 나왔다.



맨 마지막에 "사람 팔자 총량은 100이고 그 속에서 자기 하기 나름이다"는 말에 좀 감동했고, 지금 뭣같이 힘들어도 포기 안했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 이런 데(사주카페)에 올 필요 없다고도 말해줬다. 내가 뭘 해보려고 버둥거리고 있다는 걸 인정해줬으니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좀 괜찮아졌다. 글을 쓸 때 최대한 나답게 쓰고 나를 많이 표현하라는 말도 해주셨다. 사주가 어떻고 저떻고를 떠나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갈 지를 생각하면서 나답게 사는 법을 많이 배우라고 하셨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뭐야, 욕을 그렇게 해놓고 사람 감동도 주고.

욕을 그렇게 처먹고 그 사주카페 재방문 의사가 있냐고?


물론. 그리고 다들 재밌게 읽었을테니 언젠가 다시 방문하면 쓰게 될 속편도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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