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는 일년 중에 절반을 반팔과 반바지를 고집하는 나에게도 드디어 긴 옷을 꺼내야하나 싶을만큼 선선한 계절이 되었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자 선선해진 아침공기가 집으로 들어온다.
아빠는 아침 저녁으로 간간이 재채기를 하고, 엄마는 요즘 같은 날씨엔 유독 블랙커피 냄새가 좋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이 맘때쯤 계절을 타는 건지 아니면 또 취준생 신세로 한 살을 먹게 생겼다는 생각 때문인지, 무력감과 우울감이 조금 자란다. 매년 반복되는 모습과 감각으로 환절기를 체감하면서 아침 공기를 마주하면서 잠을 깨려고 노력해본다.
산책을 나와 길바닥에 떨어진 은행열매를 피해 까치발로 요리조리 걷다가도 계절을 알 수 있었다. 아직 은행나무가 완벽하게 노란 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까슬까슬하게 마른 낙엽이며 강아지풀을 보면서, 산책로를 따라 심어놓은 갈대. 거리엔 어느 새 추운 계절을 준비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멍때리거나 바닥만 보며 걸은 지가 꽤 되었나보다. 이런 모습들을 전부 놓치고 살았다. 플래너에는 시간 단위로 계획을 꼬박꼬박 새우기 위해 노력하면서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무신경하고 영혼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매일 비슷한 코스로 조깅을 하면서도 어제는 무슨 옷을 입고 뛰었는지, 어디까지 쉬지 않고 갔는지, 무엇을 보며 걷고 뛰었는지 기억나는 것들이 하나도 없었다.
몇 곳의 회사에 입사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고나서 괜히 싱숭생숭한 마음에 괜히 청소기를 돌리고 거실바닥을 닦아보기도 하고, 빨래를 해서 볕 좋은 시간에 널어보기도 했다. 그러고도 남는 오후 시간에는 다시 운동을 하러 나가거나 살 것도 없는데 마트에 들러 술을 한 병 사서 마실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세제며 과자, 컵라면 같은 것들을 사다가 쟁여놓는다. 날씨가 추워진만큼 뭔갈 하지 않으면 연말을 제대로 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결국은 집에서나 밖에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나는 환절기를 이렇게 보내면서 지난 계절보다는 좀 더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좀 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 좀 안된다고 해서 너무 불안해하지마라, 누구나 좋은 날은 다 온다" "거의 다 왔다, 잘 해왔으니까 좀만 더 버텨봐라" "너는 이제부터 시작일 수도 있지, 힘내"
친척들의 짧은 가을 인사에 한번 더 힘을 얻기도 하지만, 어떤 노랫말처럼 힘내라는 말에 왠지 기운이 더 빠질 때도 있다. 조깅도 다녀왔고 청소도 했고 빨랫거리도 없는 시간에 느끼는 공허함에 눈물이 날 뻔 한적도 있었는데, 일도 안하는 주제에 팔자 늘어지는 소리 한단 말을 들을까봐 입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하지만 팔자가 늘어졌다면 적게 일하고 많이 벌었을 것을. 적게 일하지도, 많이 벌지도 못하니까 다음부터는 누가 물으면 입밖으로 꺼내야겠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느라 마음이 좀 이랬다저랬다 했는데 이렇게 글로 쓰다보니 마음이 한결 정돈되는 것 같다. 작은 것들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 내 최대의 단점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만큼 바뀌고 있는 내 모습을 잘 캐치해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내가 나를 너어무 사랑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계절을 차분히 맞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