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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Jan 20. 2023

밥 한번 먹자는 인사


코로나를 시작으로 약속을 잡을 일이 줄어들다보니 이제는 딱히 누군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안하게 되는 세상이 온 것 같습니다. 정말로 급한 일이 아닌 이상 안부 인사나 친구와의 농담 정도는 카톡으로도 가능하게 되었고, 줌을 켜고 면접 스터디를 한 적도 있으니 이제는 누가 밥을 먹자고 하면 반갑기도 하지만 사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궁금할 때도 있었습니다.


사회생활의 공백기가 생기게 되면서 만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자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의 수도 줄어들게 되었고, 자주 안부를 주고받던 사람들과도 연락이 뜸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제는 슬슬 청첩장을 돌리기 시작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친구들과 연락을 하거나 짧게나마 직접 만날 기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 돌아갈 시간이 되면 “연락할게” 라던가 “언제 다들 밥 한번 같이 먹자”는 말을 남기며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누구와도 밥을 같이 먹는 일은 없었습니다. 만나자마자 세상 반갑게 인사를 했고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으며 결혼식도 같이 봤지만 인사를 나누자마자 돌아가는 길은 각자였고 그렇게 카톡도 DM도 없는 날들이 더 많았습니다. 어느 날은 꽤 친했던 대학 동기에게 연락해서 저번 주 결혼식 날 하객으로 만나서 반가웠다고, 그날 잘 들어갔냐고 연락을 해봤습니다. 그리곤 그 때 다들 밥 한번 먹자더니 어째 아무도 연락이 없느냐고, 혹시 나 빼고 다들 모인 거 아니냐며 반은 농담으로 말을 건넸지만 속은 내심 떨렸습니다.



“다들 사는 게 바쁘니까, 주말 결혼식 갔다가 쉬고 싶고 그냥 인사차 한 말이지 않겠어?”라는 답장이 왔습니다. 정작 본인도 그런 인사를 수 십 번 던져놓고는 결국은 집에 와서 잠만 퍼잤다는 내용의 답장이 몇 번 오고 간 뒤, 세상 모든 말에 의미를 부여하는 스스로가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게만 느껴졌습니다.



근데 또 한편으론 궁금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저만큼이나 밥 한 끼, 차 한 잔 하자는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지. 저도, 예전에 동아리 활동을 같이 했던 대학 동기들도 모이기만 하면 할 얘기가 산더미 같을 텐데. 이제는 경조사가 아니면 서로 연락 닿을 일도, 얼굴 볼 일도 적어진 만큼, 누군가는 영혼 없이 밥 한번 먹자는 인사를 했을지라도 저에게는 꽤나 반갑게 들립니다. 새로운 사람 앞에서 느끼는 긴장이나 설렘보다는, 학창 시절과 20대의 한 꼭지를 같이 했던 친구들을 만나서 편하게 보내는 시간이 그립기도 합니다.


얼마를 벌어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마 지금부터 추진한다고 해도 그때 그 시절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건 거의 불가능할 듯합니다. 그리고 제아무리 많은 돈을 번다 해도 그 때의 주량과 체력, 철없음을 장착하고 재미나게 시간을 보내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대신 조금 더 차분하고 편한 분위기로 밥은 한 끼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퇴근하면서 갓 입사한 회사에서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오늘도 헤맸다고 대학 동기에게 카톡으로 푸념을 늘어놨습니다. 입사한 지 4년 차인 동기는 침착하게 말합니다. “힘내고, 밥 한번 묵자”

말뿐이어도 고맙다 이 자식아, 답장을 보내자마자 설 쇠고 잠시 시간이 나니 2월 초쯤에 보자는 조금 더 구체적인 답장이 왔습니다. 이번엔 기대해도 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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