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가을방학>의 '호흡과다'
인턴 자소서를 몇 개 썼는데 아무데에서도 연락이 없다. 아르바이트 지원도 두 개 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다. 접수해 놓은 토익은 4일정도 열심히 공부하고 손도 안댔다. 일본어 인강을 듣기 시작하면서 중국어 공부는 좀 뒤로 미루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HSK를 미루고 있다. 주말에 만난 친척들은 졸업이 언제냐고 벌써 2년째 물어보셨고 왜 아르바이트도 안하냐고 물어본다. 사촌동생은 벌써 3년째 일을 하는 중이고 동생도 웬일로 평소 같지 않게 대회 성적이 좋다. 인터넷 배송조차도 내 편이 아닌건지 우리 집에 시킨 책이 다른 집으로 배송된 것 같다고 경비실에서 연락이 왔다. 사실 맨 처음에는 화가 났다. '아니 주문하고 다음날에 도착한 택배 배송이 느리다고 화낼만큼 성격이 급해졌네' 싶었기 때문이다.(원래는 느긋하다못해 느려터진 편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래도 택배를 찾아오고 나니 오기로 한 지 4시간이 넘어서 혹시 중간에 분실된게 아닌가 했는데 그래도 어째 금방 찾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다른 책들은 그냥 왔는데 이 책만 비닐에 꽁꽁 싸매져서 왔다. 이렇게 된 이상 환불은 귀찮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제일 먼저 뜯었다. 에세이집일 줄 알았는데 만화여서 약간은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그림체를 보고는 그냥 본능적으로 좋았다. 세상 모든 만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런 그림체의 생활툰이나 명랑툰은 항상 웰컴이다.
하루를 얼만큼 알차게 살아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요즘은 하루에 한 두 시간 단위로 해야할 일, 하고싶은 일이나 약속 등을 적으며 스케쥴러를 채우고 있었다. 짧지만 매일 하루동안 뭘 했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를 다이어리에 쓰면서 하루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겐 오늘 하루를 살아낸다고 말할만큼 힘든 일은 없지만, '일(직업)' 자체가 없는 것 같아 이따금씩 스트레스를 받거나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나기도 한다. 지나간 스케쥴러를 보면서 이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데, 왜 주변에는 나를 이유 없이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지, 과거의 슬픈 기억이 훅, 하고 올라와서 모든 의욕을 꺾어놓는지 몰라서 슬프고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SNS에 매일 업데이트 되는 타인의 행복한 일상에 오히려 몇몇 사람들은 박탈감과 우울을 느끼기도 한다는 뉴스도 자주 보인다. '오늘의인생'은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다. 오늘 마셨던 차, 샀던 간식거리, 비가 그친 뒤의 무지개를 말하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과 그 속에서 누구나 느꼈을 법한 마음을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아주 솔직한 기분을 표현하는 꼭지를 읽을 때면 '어 맞아 나만 유별나게 그런거 아니었어' 싶기도 했고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만화에 그렸다는 점도 좋았다. 고스란히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위로하는 데에서 나도 조금은 담담해진 것 같다.
힘내라는 말에 왠지 기운이 더 빠질 때가 있지, 너는 알겠지
가을방학의 '호흡과다'라는 노래의 첫 소절이 생각났다. 나에게는 그만큼 힘들어도 안죽는다, 울적한 일은 털고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훨씬 많았다. 그럴 힘이 남아있으면 진작에 털어버리고 재밌게 보냈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는거잖아요, 사람이 늘 밝아야만 하나요? 따져 물어봐야 까칠하다 예민하다는 평가를 받을게 뻔하니 속으로 꾹꾹 누르고 사는 것 같다. 호흡과다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죽을만큼 힘들다고 내색조차 않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정말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라는 생각, 당신도 소중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오늘의 인생'을 읽으며 조금은 덤덤해졌다.
요즘은 자기 전이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손 닿는 머리 맡에 시집을 두고 잤었는데 마스다 미리의 다른 책을 여러 권 쌓아두고 읽어도 좋겠다는 오늘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