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계단 - 채사장

안불편함 주의.

by 지한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오히려 바빴다. 여행을 다녀왔고 자소서도 썼고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 별로 기억도 남지 않을만큼 난해했던 책도 읽었다. 그리고 아무런 결과가 내 손에 쥐어지지 않았을 때 다시 허탈함을 느꼈다. 요즘은 눈에 보여야만, 손에 잡히는 것이어야만 좀 마음이 놓이고 결과를 바로 확인해야 답답함이 덜하다. 쫓기듯 살다보니,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좇아서 살다보니 방향성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현실적인 얘기만 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현실 바깥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사도 삶과 죽음이 하나라면 나라는 존재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왜 아등바등 살아야하는가, 지나간 역사가 앞으로 다가올 과학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질문에 대한 답을 친절하게 요목조목 설명해주는 책은 아니다. 책에 나오는 지식들이 지금 내가 가진 세계를 넓히려 들 때마다 질문에 대해 다시 질문을 하게 된다.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을 때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굳이 남는 것이 있어야 하나, 등등.


사춘기 시절 <데미안>을 읽으며 받았던 신선한 충격이 다시 떠올랐다.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내가 가진 생각이 나를 만든다고 믿었는데, 다시 또 이걸 흔드는 건 내가 생각한 세계의 근본부터 흔드는 일이다. 분명 크게 혼란스럽고 불편한 느낌도 들 것이다. 알을 깨고 나온 새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아와 세계가 결국 하나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 질 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도 결국은 내가 만든 세계다. 고통 또한 내가 만들어낸 것이고 기쁨도 내 안에서 나오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현실이, 정치 제도가, 사회 구조가 나를 옭아매고 있다고 소리치기 전에 나는 얼만큼 작은 알에 나를 가두고 있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덧붙이는 생각]

최근에는 '미투운동'으로 사회에서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던 기존의 문제점들을 정면으로 타파하려는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안정된 세계'를 깨기 위해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투운동은 수직적 관계에서 파생되는 권력을 이용해 성폭행이나 성추행으로 이어져왔다는 문제를 보여준다. 이를 남녀 간의 대립구도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거나, 이젠 좀 질린다, 예전에는 더했는데 세상 좋아진 줄 알라는 말로 피해 입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묻어버리는 이들이 아직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몇 십년 전, 백인들이 주로 가는 학교에 진학했던 흑인 여학생을 찍은 사진 속에서, 주변 백인 학생들은 경멸 어린 눈빛과 조소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 알을 깨지 못한 우리 사회도 나중에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평화로운 세계가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찾아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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