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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비스커스 Apr 05. 2023

불편한 편의점의 성공이유

정답은 친절한 사회다. 

'노매드 랜드'란 영화를 봤다. 

황야에서 주인공이 늙은 여자의 머리를 이발기로 깎아주었다.

늙은 여자는 암 말기로 몇 개월 생이 남지 않았다. 

주인공은 역시 암으로 죽은 자신의 남편 이야기를 했다. 

두 사람은 굉장히 교양 있는, 철학적인 대화를 나눈다. 

죽음을 대하는 방식도 그렇다. 


황야에 모인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모두 서로에게 친절하다. 

나는 그게 정답이라 생각한다. 우리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지금보다 조금 더 친절한 사회. 친절한 세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반대의 제목인 초베스트셀러 '불편한 편의점'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린 남을 하대하고 남보다 우월해야 만족해 한다. 

명품백과 외제차가 취향인 사람은 없다. 인정하자. 백프로 과시용이다.

누군가의 불행과 죽음만이 내 행복의 지표라면 과장일까?

포르쉐 안에서 모닝을 바라봐야 찐 맛이라 느끼지 않나?

그래서 수년째 oecd자살율 1위란 오명이 부끄럽지 않은 거 아닐까?

행복지수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하니까. 

(개인적으로 아프리카 빈곤포르노랑 외국인 출연하는 국뽕 좀 그만 틀면 좋겠다)


난 이 영화를 보며 과연 실화일까 의심됐다. 

(물론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실화다)

요즘 절실히 느끼는 건데, 우린 이렇게 교양 있지도 사고가 깊지도 않다. 

솔직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임박해서도 자신의 재산만을 신경 쓸 거 같다. 


'내 피 같은 돈을 누가 갖게 되는 거지?'


나도 이제 50대 초반이다. 

죽음이 이상한 나이가 아니다. 

몇 달 전 만난 변호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50대는 고비가 있어요. 사업도 건강도. 그 고비에 액땜을 했다고 생각하세요.'

'네. 항소는 안 할 거예요. 정말 억울하고 말도 안 되지만 끝낼게요. 지쳤어요'


내가 항소를 한다면, 이제 법원과 싸우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비상식을 맛본 나로선 항소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됐다. 

변호사도 동의하는 거 같았다. 

난 다 가진 그가 부러웠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 거 같았다. 

모든 삶은 상대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 

무엇을 하며 먹고살지 모르지만, 떠나고 싶다. 

무식하고 이기적인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다.

친절한 세상이 아니라면, 아예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

죽을 땐, 그저 한 순간에 불과할 시간들일뿐인데.

싸우며, 눈치 보며, 화를 삭이며 살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스타일에 안 맞다. 

돈을 원했다면, 난 이렇게 오래 글을 붙잡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난 그저 한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대우받고 싶었다. 

누군가의 위에 서고 싶지도 않았다.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 존중하는 삶을 원했다. 

남보다 더 많은 부를 과시하고 싶지도 않았다.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정도면 만족했다.

그게 그렇게 큰 바람이었나?

왜 나는 아직도 여기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죽음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삶은 또 얼마나 가치가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 반문해 본다.


영화 속, 어딘가로 다시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나의 모든 건, 아직 내 곁에 있다. 다행이다.


추신: 노숙자의 ** 설정은, 정말 불편한 반전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국독자는 만족해하지 않는 걸 작가는 아는 걸까? 그 정도 불행은 돼야 웃으며 책장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도 저렇게 되는데'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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