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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비스커스 Mar 18. 2023

인생은 모른다

처조카 이야기

작년에, 27살이 된 처조카가 유튜브 제작회사에 취직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필리핀으로 유학가 공부했다. 

녀석은 아직도 그 일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자신은 원치 않았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녀석에겐 3살 위 형이 있다. 

첫째는 외향적인 성격이라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말했다.

필리핀에 유학 가겠다는 첫째의 의견이 더 강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렇게 필리핀에 살던 두 형제는 국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한국의 대학이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 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사실 지방대다. 

첫째의 토익점수는 900점이 넘었다. 둘째 역시 그리 나쁜 점수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실망감은 대단했던 거 같다. 

영어를 잘해 첫째는 카츄사에 갔지만, 이력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미 한국엔 영어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첫째는 연애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재밌는 청춘을 보내고 있었다.

문제는 둘째였다. 


녀석은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를 사귀어도 그 수가 많지 않았다. 

가족과 있을 때도 자신의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당연히 어른들은 둘째를 볼 때마다 걱정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고, 녀석은 대학을 중퇴했다. 

대학의 지명도를 떠나 한국에서 대졸자와 고졸자의 차이는 명확했다. 

우린 어떻게든 복학하라고 설득했지만, 듣지 않았다. 

녀석은 화를 내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강요할 수 없었다. 


그 후 녀석은 PC방 알바, 물류센터 알바를 했다. 

후일 둘 다 굉장히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밤낮이 바뀌는 PC방. 고된 노동의 물류센터.

당연히 녀석은 오래 근무하지 못했다.

뜬금없이 음악을 하겠다며 보컬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녀석의 노래 솜씨는 문외한인 내가 듣기에도 썩 훌륭하지 않았다. 


그러던 녀석이 다시 컴퓨터 그래픽을 배운다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얼마나 갈까 걱정하던 차에, 몇 작품을 만들었다며 전송해 왔다.

의외로 꽤 괜찮았다. 

정말 녀석이 만들었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이런 소질이 있었네?'


몇 개월 후, 취직을 했다며 카톡을 보내왔다. 

난 당연히 첫째가 잘 풀릴 줄 알았다. 

그 녀석은 어쨌건 대학도 졸업하고, 영어실력도 더 뛰어났고, 성격도 사교적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모르는 거였다. 


지금 이 순간, 첫째는 백수고 둘째는 어엿한 직장인이다.

구독자가 70만이 넘고, 인기작의 경우 한 편당 조회수가 300백만에 가까운 회사다.  

여담이지만, 사장이 30대 중반으로 연극을 하던 배우출신이라고 했다. 

돈도 안 되고, 재능도 없는 거 같아 돌아서 영화리뷰를 시작한 게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얼마 전 결혼하고 차도 뽑았는데, 포르셰라고 했다. 

사무실도 100평 되는 곳으로 옮기고 직원도 두 배는 더 뽑을 계획이라고 한다. 

찾아보니, 한 채널의 월 수입만 월 천만원이 넘었다. (광고수입빼고)


첫째도 어서 눈높이를 낮춰 취직하면 좋겠고, 둘째는 꾸준히 실력을 키워 독립하길 바란다. 

(첫째는 둘째가 자격증을 딴 포토샵 기술을 배우고 있다)

내 인생도 걱정이지만,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요즘 일반인들의 연애 관련 프로그램이 인기다. 

비슷한 포맷의 프로가 9개쯤 된다.

실제 연애는 안 하면서, TV로 대리 만족하는 세대라고 전문가는 진단한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다니는 공장의 남자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솔로다. 

전혀 연애얘기를 하지 않는다. 아예 꿈도 꾸지 않는 듯하다. 마치 금기어 같았다. 

솔직히 나이를 떠나 게임에 관한 대화가 전부인 듯했다. 

짝 없이 혼자 살아도 행복하다 하는데, 서글프단 생각이 드는 건 내가 늙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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