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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비스커스 Mar 19. 2023

납골당에서

영화제작자

난 납골당을 방문할 때마다, 꼭 들르는 방이 있다. 

그 방은 처형의 유골이 놓인 방과 벽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한마디로 옆방이다

그곳엔 자살한 영화제작자의 유골함이 있다. 


1960대 후반생인 그는, 나이 42세에 생을 마감했다. 

미혼의 그는 꽃다운 청춘은 아니지만, 아까운 나이임은 분명했다.

무엇이 젊은 나이의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을까?

바로 영화제작이었다. 

사인은, 단순히 기사내용을 보면 신생영화사를 만들었는데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서라고 한다. 

무슨 이유인지는 유족들이 밝히길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골함 앞에 놓인 사진엔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이 찍혀 있다. 

인간관계를 잘했는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지인들이 메모를 붙이고 간다.

모두 그가 편안하게 잘 지내길 바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자신을 사랑해 주는,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세상을 등졌을까?

유족들은 그를 위해 제일 좋은 자리, 넓은 칸에 유골함을 안치했다. 

다른 칸에 비해, 비용이 배 이상 들었을 것이다.

그는 왜 기획한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에 생을 마감했을까?


안타깝게도 그의 유작은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2008년에 개봉한 영화인데, 내용이 좀 억지스러웠다. 

두 명의 평론가가 평을 남겼는데, 각각 별 6개와 4개를 줬다.

한국영화에 이 정도 평점이면 거의 낙제로 봐야 한다. 

그 유명한 영화 '자전거왕 엄복동' '디 워'가 별 4개 영화다.  


물론 하루에도 수십 명씩 자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더 어린 사람도 있고, 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이도 있을 것이다.

그의 죽음에 유독 마음이 아픈 이유는 뭘까?

잠깐이라도 발이라도 담갔기 때문일까?

무엇인가를 알면, 그것은 이전의 것이 아니다.

인간이나, 사물이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포츠 경기의 룰을 알면, 완전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늦은 나이지만, 인생을 알고 싶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삶을 보고 싶다.

더 재밌고, 더 관심가는.


그의 유골함이 있는 방의 맞은편에는 

역시 40 중반 나이에 세상을 뜬 유명여성제작자의 유골함이 놓인 방이 있다. 

그녀는 한참 잘 나가던 시기에 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난 신(god)이 나 천국을 믿지 않지만, 두 사람이 마주 보며 평생을 사랑했던 영화이야기를 즐겁게 나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덜 외롭고 덜 슬프지 않을까?


추신: 아이러니한 사실, 그의 유골함에는 언제나 꽃이나 편지가 붙어 있다. '형, 이런 일이 있었어. 기쁘지? ' '00야, 거긴 어떠니? 나 힘든데 용기를 줄래.' 하지만 그녀의 것엔 누군가 다녀간 흔적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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