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이 걸렸다

사과하지 않는다.

몇 년 전 아는 감독 겸 제작자와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다. 

우연히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했는데, 아는 감독이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그는 영화계를 떠나 공연, 전시 사업을 했다고 했다.

사실 그는 미대로 유명한 대학을 나왔다. 

대학 때 이미 뮤직비디오를 찍어 큰돈을 벌었다고 했다. 

물론 유흥으로 다 탕진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도 대작을 만들어 한국영화의 획을 그었다. 

그 후, 큰 실패를 맛본 후, 영화계를 떠났다.  

하지만,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겨 다시 영화판에 돌아온 것이다. 

난 그동안 연락이 끊긴 연유를 알게 되어 섭섭한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는 나를 알고 있기에 바로 계약을 진행했다. 

계약내용은 업계 평균 수준이었다. 

과하지도 그렇다고 박하지도 않았다. 

돈은 바로 입금되었고, 난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 

몇 번의 지난한 회의가 이뤄졌고 작품은 서로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나왔다. 

짧은 시간에 비해, 양질의 작품이 나왔다면서 감독은 강남으로 나를 불러 술을 사줬다. 

정말 기분 좋은 마무리였다. 

감독은 술자리에서 다른 제작자들에게 나를 칭찬하며, 지원사업에 출품할 거라고 했다. 

지원금이 몇 억인데, 자기 자본과 다른 제작자의 자본과 기술을 합쳐 작품을 완성할 거라고 계획을 말했다. 

그리고 며칠 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그날 같이 있던 제작자 중 한 명이 작품의 포스터를 맡았는데, 이게 표절로 걸린 것이다.

외국 무명작가의 사진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내가 봐도 인물만 다를 뿐 배경이며 구도가 완전히 똑같았다. 

그 사실이 적발되어 아예 심사에서 제외되었다.

내가 쓴 작품이, 시나리오가 한순간에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폐품꼴이 된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우린 대책회의를 하느라 다시 모였다. 

솔직히 대책회의고 나발이고 다 끝난 문제였다. 

남은 건 자초지종과 사과를 받는 것뿐이었다. 

여기서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감독은 그 제작자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제작자 역시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 

둘은 화기애애하게 술을 마셨다. 

가운데 앉은 나만 바보가 되었다. 

알고 보니, 표절한 제작가가 갑이었다. 

감독은 자신의 회사와 그의 회사 간의 주식교환을 하고 싶어 했다. 

빈털터리, 한 푼 가치 없는 주식과 나름 알짜주식을 교환해 돈을 벌려는 수작이었다. 

결국 난 원고를 다 썼음에도 잔금을 받지 못했다. 

영화 제작이 무산되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을로 산다는 건, 이런 것이다.

무시당하고, 억울해도 한마디 못하고, 화를 낼 수도 없고, 모든 책임은 져야 한다. 

더럽고 치사해도 현실이다.

우린 벗어날 수 없다.

 

아직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남의 작품을 뻔뻔하게 베끼고, 남의 이름을 훔치고. 

예술은 사기란 말이 맞다. 

그리고 이 세상엔 사기꾼이 너무 많다.

얼마 전, 내 변호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글이 제일 어렵고, 

음악이 제일 돈을 잘 벌고, 

미술은 사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