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비스커스 Mar 10. 2023

김주혁을 기리며

히비스커스란 필명을 짓게 된 사연

한국예술인 복지재단에서 주최한 1박 2일 여행에 참석했다. 

(백수에 가난한 나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충북 어디로 간 거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서울 잠실에서 8시쯤 출발한 버스가 몇 시간을 달렸다. 

용인에 사는 내가 그 시간에 맞추려면, 6시쯤 버스에 올라야 한다. 

그럼에도 이른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출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다 겨우 약속 장소로 갔다.

버스는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몇몇은 서로를 알아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개봉한 영화의 감독도 있었고,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감독도 있었다. 

그들의 대화에, 보잘것없는 나는 왠지 위축되었다. 

재밌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되었는데,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작품의 작가도 있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나는, 시나리오 평을 해주는 알바를 했다. 

이게 예상보다 훨씬 번거롭고 힘든 일이었다. 

매주 시나리오를 읽고, 3장 정도 평을 써 줘야 했다. 

우선 재미없고, 말도 안 되는 글을 읽는 게 힘들었고, 그걸 3장이나 써야 하는 건 더 고역이었다. 

그중 최악의 작품이 있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해서 아내와 같이 다시 읽었는데,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 

그 작가 겸 감독이 눈앞에 있었다. 

작품만큼 괴짜였다. 

요란하고, 시끄럽고, 투박했다. 대화 사이에 끼어드는 건 기본이었다. 

내 스타일은 확실히 아니었다. 

얄궂은 게, 그와 난 나이가 비슷하다고 한 방을 주었다. 코고는 소리에 정말 한 숨도 못자고 꼬박 밤을 세웠다.

귀도 막아 보고,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바닥에 누워도 봤다. 소용없었다. 

난 좀비처럼 몇 시간을 캄캄한 건물 안을 휘적휘적 걸어 다녔다. 


그가 쓴 시나리오로 찍은 영화에 출현한 배우가 인터뷰했던 말이 있다. 


'내가 출현한 건 실수였다. 최악의 영화다.'


참석자 중엔 뮤지션도 있었는데, 솔직히 이 부분이 헷갈린다. 

싱어게인으로 유명해진 '이승윤'을 본 거 같다.

물론 이때는 존재감이 제로였던 때이다.

그 뮤지션은 조용했고, 내내 미소를 지었고, 과묵했다.

늘 힘든 시기지만, 그때도 그랬기에, 난 웬만하면 입을 떼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당연히 그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자 건물이 나타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음기가 가득한 산이라 절이 없다고 한다.  

참석 인원은 대충 20명쯤 되는 거로 기억된다.

숙소에 도착한 후, 우린 트레킹을 하고 화초를 심는 등 심리치료수업을 들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진 않았다. 


내가 그날을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배우 '김주혁'이 사고로 죽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보다 한 살 어리다.

1억이 넘는 최고급 외제차를 탔던 그의 차사고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거고 알고 있다. 

음주도 약물도 아니었다. 

나와 참석자들은 닭백숙을 먹으며 뉴스로 그의 사망소식을 접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분위기가 확 바뀌는 걸 느꼈다. 

나의 기분을 포함해서. 

분명 남의 일인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김주혁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 화려한 존재였다. 

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였다. 

그의 이른 죽음이 본인에게나, 영화계에 너무 안타까웠다. 



강사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관찰한 후, 연상되는 식물을 찾아보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내 옆자리의 뮤지션이 나를 보며 '히비스커스' 꽃이 생각난다고 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꽃이름을 들었다. 

이후 마음에 들어 필명으로 쓰고 있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난 그 시절 어딜 가든 조용히 있기로 결심한 때였다. 

어떤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그곳에서 뭔 말을 한지 기억이 없다. 

그는 왜 날 보고 '히비스커스'를 떠올렸을까?

이 꽃은 무궁화과에 속하는 식물로 아주 화려하다. 

내가 남한테 그렇게 보인다는 게 의외였다. 


그가 지금 나를 본다면, 어떤 식물을 떠올릴까?

아마 '드라이플라워'가 아닐까?


https://youtu.be/HAZJAzCshN4

작가의 이전글 축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