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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비스커스 Jan 25. 2023

밀리언 리즌

단 한 가지 이유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가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쓰며 행복의 정의를 내렸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것'


행복은 경험이라고 한다.

가난하면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결국 행복도 팔자고 운이란 뜻으로 이해된다.

이제 우린 무거운 짐이 벗고 자유로워진다.

고마운 일이다.


청소기 회사를 3일 만에 그만두고 20만 원 가까운 돈을 받았다.

큰 회사라 그런지, 정확하고 빠르게 입금되었다.

인사담당자도 친절했다. 오히려 문자로나마 나를 걱정해 주었다.

의례적 일지 몰라도, 그 따뜻함이 고마웠다.

나와 아내는 그 돈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퇴사 후에도 우울증과 불안장애, 공황장애로

식사를 할 수도, 잠도 잘 수도 없었다.

늘 내 기분을 맞춰주려 노력한 아내는

양구에 사는 작가 친구의 집에 가자고 제안했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다른 친구 부부도 함께 하기로 했다.

다 함께 만나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우리는 해안 시래기축제에 갔다.

해안이라 해서 바닷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하긴 양구에 바다가 있을 리 만무했다.

정동원, 김태연이 초대가수로 와서 그런지 인산인해였다.

대충 만든 간이 테이블에 간신히 앉았다.

주차를 하려 몇 바퀴나 돈 걸 생각하면, 이도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다.

(차까지 걸어갈 걸 생각하면, 캄캄하다)

음식물이 지저분하게 떨어져 있는 테이블을 닦아줄 리 만무했다.

일회용 용기에 담긴 음식들을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물론 내가 먹은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정신없는 상황 덕에 내 모습을 감출 수 있어 다행이었다.

특산품 시래기를 이용한 된장 비빔밥은 맛이 괜찮았다.

값은 칠천 원이었다.

여기저기서 나이 든 분들이 웃으며 막걸리와 소주를 마셨다.

아이들은 그 옆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난장판이었다.


대충 먹고 아내와 산책을 했다.

많이 회복됐다고 해도 여전히 심장이 조여왔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게 힘들었다.

직장이 없다는 게, 일거리가 없다는 게 나를 미치게 했다.

헛살았다는 생각과 늘그막에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괴로웠다.

 

친구들과 그 가족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꾹 참았다.

내가 공황장애인지, 우울증인지 모르겠다.

얼굴, 특히 눈 부위가 저린다.

마치 다리가 저리듯.

그래서 자꾸 눈을 껌벅거리게 된다.

어지러운 증상도 있다.

식욕도 없고 잠도 잘 못 잔다.

계속 악몽을 꾸며 한두 시간 만에 깨어난다.


양구 친구의 안내를 받으며 축제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무척 힘들었다. 그런 내가 정말 싫었다.

이런 상황을 만든 날 스스로 용서할 수 없었다.

1시간 정도의 트레킹에 숨을 헐떡거렸다.

가이드가 설명을 하는데,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빨리 내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내도 새벽부터 일을 하고 운전을 해서 그런지 무척 힘들어 보였다.

내가 힘들면 아내는 배로 힘들 게 자명하다.

우린 다만 서로 모른 척할 뿐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재중이라 내가 다시 걸었다.

뒷자리를 보라고 했다.

보니 봉투가 있었다.

힘내라는 글과 함께 현금들어 있었다.

편지를 읽는데 눈물이 났다.

아내는 당장 돌려주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내가 친구 남편의 계좌로 돈을 보냈다.

고마운 마음만 받겠다고 했다.

난 누구보다 그들이 넉넉지 않은 형편임을 알고 있다.

작은 아파트가 한 채 있었지만, 시쳇말로 문고리만 그들 거였다.

아내와 난, 최악이 되면 쿠팡에 같이 가기로 했다.

20년 글쓰기에서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

팔리지 않은 수많은 작품들만 컴퓨터에 처박혀 있다.

(몇 번 시도했지만, 차마 지우지 못했다)

이 허무를, 이 좌절을, 이 절망감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난 패배자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었다.


레이디 가가가 '수많은 이유'라는 노래에서 말했다.


떠나야 할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여기 머물 단 한 가지의 이유만 있으면 돼.


난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의 보잘것없는 이 글이, 아무것도 아니라 괴로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다.


https://youtu.be/ohtGLQX65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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