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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비스커스 Mar 06. 2024

리빙

자살을 선물하는 나라

빌나이, 참 재밌고 개성있는 배우다. 

러브액추얼리부터 여러 영화에 나왔다. 주로 영국영화다. 

뭔가 장인정신이 느껴진다고할까?

털털한 거 같은데, 고집도 있다. 

그래서 이 배우가 나오면 왠만하면 본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다른 의미로 봤다.

원작을 봤다는 거, 그리고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쓴 소설가라는 점.

원작은 일본영화고, 소설가도 일본인이다. 

아마 존경의 의미로 각색을 하지 않았나 싶다.


결론적으론, 기대만 못했다. 

일본영화 원작은 차제하고, 늙은 공무원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내용이다.

아내없이 아들부부와 함께 하는 소시민이다. 

아내를 엄청 그리워하는 거 같지도 않다.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다.

공무원답게 산다. 계산된 움직임과 사고.

민원에 무감각하고. 권위에 복종하며.

한마디로 잘 산다.


시한부 선고는 그의 삶을 바꿔 놓는다. 

뭐 그런 내용이다.

큰 변화도 없고, 아주 작은 성과를 이룬다.

특이한 건, 죽음을 아들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미워서도 싫어서도 아니고, 부담스럽고 귀찮아서 그런 거 같다.

그냥 눈오는 날 혼자 그네타며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다 죽는다.

(솔직히 이렇게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자살율을 oecd국가중 최고라 들었다.

몇 년째.

얼마 전, 인간이 계급대로 살았을땐 자살이 적었단 얘기를 들었다. 

자신의 처지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여기기 때문이란다. 

그건 외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왜 한국만 유독 자살율이 높지??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이유는, 늙어 비참해 지지 않기 위해서다.

폐지 줍고 싶지 않고, 굶고 싶지 않고, 병원에 가서 치료 받고 싶기 때문이다.

더러운 곳에서 살고 싶지 않고, 춥지 않게 자고 싶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곱게 죽고 싶기 때문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한국인은 죽음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기다린다.

죽음을 위해 돈을 악착같이 모은다.

곱게 죽기 위해 청춘 내내 일을 한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노후는 끔찍하다. 

몇몇 선택된 자들만이 그 두려움에서 해방된다.

비참한 죽음에서.


그래서 그 비참한 죽음이 두려워.

덜 비참할때인 젊어 자살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일개 내가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순리면 따라야지.

아직은 아니니, 비참해질 때까진, 행복하게 살란다.

그 후엔, 영화 속 주인공 처럼 가고 싶다. 

가장 행복했던 때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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